'농약 사이다' 사건: 딱 하나의 빈 퍼즐 조각

2015-07-24     곽상아 기자
ⓒ연합뉴스

■ 농약이 들어 있었던 사이다

이날 오후 2시43분께 박씨를 제외한 나머지 할머니들은 냉장고 안에 있던 사이다를 나눠 마셨다. 그러고나서 하나둘씩 쓰러졌다. 전날 저녁 주민들이 마을 잔치를 하며 마시고 남겨둔 사이다였다. 가장 나이가 적은 신아무개(65) 할머니만 비틀비틀 마을회관을 걸어나와 밖에 쓰러졌다. 오후 3시54분 마을회관 바로 왼쪽 집에 사는 주민 박아무개(63)씨가 119에 첫 신고를 했다. 신고를 한 박씨는 이장인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집으로 되돌아갔다. 박씨는 이후 경찰에 “신 할머니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걸어 나왔다. 마치 중풍에 걸린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첫 신고를 한 박씨가 집으로 간 사이 용의자인 박씨가 마을회관에서 신씨 할머니를 뒤따라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119구급차가 도착하자 아무 말도 없이 마을회관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3분 뒤 신씨를 태운 구급차가 출발할 때 박씨는 마을회관 앞 계단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회관 안에 다른 할머니 5명이 쓰러져 있는 것을 몰랐던 구급대원들은 마을회관 앞에 쓰러져 있는 신씨만 태워 상주적십자 병원으로 옮겼다. 마을회관 안에 쓰러져 있던 할머니 5명은 이후 이장에게 발견됐고, 병원에는 1시간가량 뒤늦게 옮겨졌다. 이날 밤 10시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이다 안에 든 농약은 살충제인 메소밀 성분이라고 경찰에 통보했다.

'농약 사이다' 살해사건 피의자 박모(82) 할머니의 사위가 20일 오후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에서 경찰 수사에 항의하며 기자들에게 박카스병 제조번호를 설명하고 있다.

■ 하루 만에 박씨가 용의자로

의심을 받던 박씨가 용의자가 된 것은 지난 15일 오후 3시30분께 박씨의 집 앞마당에서 뚜껑이 없는 자양강장제 병이 발견되면서부터였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한 결과 이 자양강장제 병에서는 살충제인 메소밀 성분이 나왔다. 사건 당시 농약이 들어 있던 사이다 병은 이 자양강장제 뚜껑으로 닫혀 있었다. 경찰은 지난 17일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딸이 있는 대구에 가 있던 박씨를 체포했다. 이날 오후 2시께 박씨의 집 뒷마당에서는 살충제 메소밀이 들어 있는 검은 비닐봉지가 발견됐다.

■ 박씨는 혐의 부인, 미스터리에 싸인 범행 동기

박씨는 아직까지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집에서 발견된 자양강장제 병과 살충제에 대해서는 “나는 모르는 일이며, 누군가가 몰래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박씨의 집 앞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달려 있는 점 등을 비춰보면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또 박씨는 “나는 집에서 음료수를 먹고 와서 마을회관에서는 먹지 않은 것이고, 피로회복제 병이나 살충제는 모르는 일이다. 옷과 전동스쿠터 손잡이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온 것은 사건 당시 사이다를 마시고 입에서 거품이 나온 할머니를 닦아줬기 때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박씨의 변호를 맡았던 박아무개(54) 변호사는 지난 22일 박씨의 변호를 맡지 않겠다며 변호사 사임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농약 사이다' 살해사건 피의자 박모(82) 할머니의 딸이 20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마당에서 항의하고 있다.

살충제 구입 과정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공성면에 있는 농약가게 6곳을 조사했지만 박씨가 이 살충제를 구입한 것은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살충제는 2012년 판매가 금지됐지만 농민들 사이에서는 몰래 일부가 거래되기도 한다. 아직까지 박씨에게 이 살충제를 건네줬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박씨가 자녀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보고 박씨가 올해 자녀와 주고받은 문자와 통화내용 등을 확인하고 있다.

이규봉 상주경찰서 수사과장은 “이번 주말까지 범행 동기와 농약을 손에 넣게 된 과정 등을 밝혀내기 위해 집중적으로 수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