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디터의 신혼일기] 2020년의 신년 계획을 전면 수정하게 된 이유

그래도 낭만적인 한 해가 될 것 같아.

2020-01-03     김현유
ⓒOlivier Le Moal via Getty Images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새해 계획을 제대로 세운 지 상당히 오래됐다.

마지막으로 새해 계획을 세운 건 2015년 1월 1일, 신랑과 맞이한 첫 새해였다. 그 당시 나는 1년 간의 인턴생활 끝에 복학을 앞두고 있었기에 i) 복학버프 받아 학점 장학금 받기 ii) 채플 올출석 상품 받기 iii) 5kg 감량 iv) 토익 930점 달성 등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계획대로 되... 되고 있는 거 맞지? ⓒ마미손

그러나 모두가 예측 가능하게도 당연하게도 지켜진 건 하나도 없었고 2015년 12월, 나는 비참한 마음으로 연초 목표와 마주하게 됐다.

대체 나는 무슨 마음으로 이런 계획을 세웠단 말인가?

 아... 아아....

새해가 되면 내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라도 돼서 게으름피우지 않고 술 줄이고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해 최상의 결과를 뽑아낼 거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 순간, 통렬한 자기객관화가 나를 강타했다. 그렇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도 않을 거야. 난 원래 술을 좋아하고 게으름 피우고 주어진 본분을 망각해 결국 요령이나 부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딴 식으로 사는 거잖아.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더니, 딱 내 얘기잖아!

 편-안

세워봤자 어차피 난 바뀌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새해 결심을 지키는 기간이 6주 즉 발렌타인데이 무렵 때까지라는데, 나는 남들이 안 하던 운동 하고 안 하던 공부 해서 고통받는 6주간 굳이 고생하지 않는 길을 택한 것이다. 어차피 6주 해 봐야 연말 되면 나나 쟤나 다 연말에 ”올해 뭐 했냐”하고 후회하는 건 똑같았다.

뉴디터의 신혼일기 쓰기” 등등. 이건 인생 전반을 두고 세운 계획이라, 제한 기간이 없기 때문에 훨씬 마음이 편했다. 죽기 전에만 되돌아보면 될 일인 것이다.

그런데 2020년에는 뭔가 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는 2년차 부부라면, 이제 슬슬 아기를 가질 계획을 좀 가지고 준비해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2020년 계획으로 ‘출산 준비’ 같은 걸 세워놓고,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철저한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펭수 흉내 내면서 애들은 못 가는 환상의 섬으로 떠나는 휴가 계획이나 짜고 싶다고. 내 마음 나도 몰라. 결국 그렇게 갈팡질팡하다가 신년 계획은 올해도 보류됐다.

한복 입은 펭수의 모습, 아니 보신각 상황을 지켜보며 경자년을 맞이하기 위한 카운트다운을 세던 2019년 12월 31일 11시 59분. 나와 신랑은 꽤 취해 있었다. 신년은 아무 생각 없이 하이한 상태에서 찾아왔다. 순도 100% 알콜이 묻은 미소로 신랑과 손을 잡으면서 그냥 올해도 재밌게 놀고 많이 사랑하자고 한 것 같다. 낭만적인 새해 계획이었다.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