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포자' 양산하는 부도덕한 학교교육

일반고의 고2 교실에는 '학포자'가 2/3에 이른다고 한다. 고교생이 되어도 자신의 생각 하나 제대로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출석일수만 채우면 중학생이 될 수 있고, 고교 졸업장도 주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는가? 이는 매우 무책임한 교육제도다! 학습부진에 있어 예방과 조기개입이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예방과 조기개입 제도가 없다.

2015-07-16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한겨레

글 | 이찬승(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

1. 시작말

2. 도덕적 교육목적이란 무엇인가?

도덕적 교육목적이 잘 실천되고 있는 나라의 사례를 통해 도덕적 교육목적이 무엇인지 먼저 짐작해 보자.

"핀란드인들은 핀란드의 학업 성취도가 높은 것은 학교가 천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아동들에 대해 학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징후가 나타나면 초기단계서 포착해 바닥으로부터 이들 모두를 끌어올려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학교교육 제4의길 138쪽)

이상의 예는 한국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특이한 사례일 것이다. 모든 교사는 자신이 맡고 있는 반 아이, 맡고 있지 않는 반 아이의 개념이 없다. 학교의 모든 아동들이 나의 아동인 것이다. 그리고 아동이 학습부진을 겪기 전에 발견하고 예방한다. 또 교장 선생님의 사례에서 보듯이 학교 간에 경쟁을 하기보다 서로 적극 협력한다. 한국이라면 자기 학교의 자원을 더 어려운 학교와 나누려 하겠는가? 한국이라면 어떤 교장이 이런 협력을 하려고 할 때 학부모가 용인하겠는가?

초등학교 입학시점에서 학생들 간의 발달정도와 학업 준비정도(readiness)는 큰 차이가 있다. 초등 1-2학년만 보더라도 아직 한글 자모음을 인지하고 발음하지 못하는 아동이 있는가 하면 이미 5-6학년 수준의 우리말을 익힌 아동도 적지 않다. 이렇게 출발선이 불균등한데도 불구하고 표준화된 교육과정으로 획일화된 교육을 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직 한글 해독이 안 되는 아동들에 대해서는 집에서 혹은 사교육에서 배우고 오기를 기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교육제도 속에서는 선천적으로 학습속도가 느리거나 어릴 때 가정에서 책읽기 지도를 받지 못한 아동이 학교수업을 제대로 따라 갈 수 없다. 그래서 해를 거듭하면서 학습결손은 누적되고 이들은 학습부진아란 부당한 꼬리표를 얻게 된다. 이는 얼마나 공정하지 못한 제도인가! 세상에는 느린 학습자와 어릴 때 가정에서 부모의 충분한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학교에 입학하는 아동이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학교교육은 핀란드처럼 질 높은 예방과 조기개입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좋은 학교의 기준도 매우 부도덕하다. 대부분의 고교들은 SKY 대학에 많은 학생을 진학시키면 좋은 학교이고 좋은 교육을 한 학교라고 인정받는다. 언론도 그렇게 보도한다. 한 입으로는 인성교육, 전인교육이라고 말하면서 어떤 혁신학교가 전인교육을 하느라 일시적으로 학업성취도 성적이 조금 떨어지면 혁신학교 체제를 비판한다. 잘하는 아동과 못하는 아동의 격차를 줄인 학교가 가장 교육을 잘했다고 칭찬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게 한국 학교교육의 비도덕성의 현주소다. 한국의 학교사회는 이렇게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이런 상황은 정의롭지 못하다. 도덕적 교육목적과 도덕적 교육 리더십의 대가인 마이클 풀런은 도덕적 교육목적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① 성취기준을 낮추지 않는다.

③ 격차를 줄인다.

도덕적 교육목적의 특징을 좀 더 자세히 서술하면 아래와 같다.

• 도덕적 교육목적이란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로 행동하는 것이다.

• 도덕적 교육목적은 타인, 타 학교, 지역사회 등 더 넓은 사회 환경을 염두에 두고 의사결정을 한다.

한국의 학교교육은 위 도덕적 교육목적의 4가지 내용을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을까? 10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30점 정도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낙제점수다. 한국 사회는 개인의 성공, 개인의 영달에 모든 것이 맞추어져 있다. 중앙정부조차 학교를 그렇게 관리한다. 학생부 관리를 개인차가 드러나도록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교육을 국가가 나서서 선발과 선별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 것이다. 한국의 학교교육은 너무 경쟁적이다. 사교육 문제도 교육의 공공성 차원에서 봐야 한다. 사교육비의 증감은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사교육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고등교육의 기회 배분에 사용되는 입시 성적에 부모의 경제력과 학력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이는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한다. 가정 배경이 학력을 결정하고 고등교육 기회를 결정하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3. 도덕적 교육목적의 부재는 누구의 책임인가?

마이클 풀런이 말하는 도덕적 교육목적을 구성하는 아래 4가지 요소에 대해 성찰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② 기대를 낮추지 않는다.

④ 공동체의 교육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서로 돕는다.

한국의 교육계는 학습이 느린 아동들에 대해 성취기준을 낮추지 않는다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경우 지능이 낮고 학습 결손이 심한 아동은 성취 수준을 낮추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느린 학습자도 배우는 내용, 배우는 방식, 배운 것을 표현하는 방식 등을 아동에 맞춰주면 느리지만 배운다. 이런 아동은 시간이 더 많이 걸릴 뿐이지 아예 성취기준을 낮추는 것은 아동의 교육기본권과 존엄성의 훼손과 관련된다. 미국은 함부로 아동을 학습부진아로 낙인찍지 못하게 한다. 적어도 아동이 교사의 수업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교사의 가르치는 내용, 방법 등을 교사가 수정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3회 정도 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고 학습부진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학습부진을 개인의 책임, 가정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한 한국과는 매우 대조되는 부분이다.

도덕적 교육목적의 부재나 이의 실현의지가 약한 것은 중앙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학생 개인 간, 학교 간 경쟁을 부추기는 역할을 중앙정부가 나서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평가 제도적 요소를 청산하지 못한 것도 정부의 책임이다. 절대평가 도입의 걸림돌인 외고, 자사고 등의 존재와 유지도 정부의 책임이다. 학교교육의 기능에서 선발적 기능을 강화하고 유지시키는 것도 정부다. 초등학생은 초등학교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최소한의 내용은 배우고 중학교에 진학하도록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중학교에서 배울 최소 기준은 도달시켜 놓고 고교에 진학시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진학시킨다. 일반고의 고2 교실에는 '학포자'가 2/3에 이른다고 한다. 고교생이 되어도 자신의 생각 하나 제대로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출석일수만 채우면 중학생이 될 수 있고, 고교 졸업장도 주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는가? 이는 매우 무책임한 교육제도다! 학습부진에 있어 예방과 조기개입이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예방과 조기개입 제도가 없다. 이는 구호를 외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교육의 도덕적 목적 부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4. 도덕적 교육목적은 어떤 과정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가?

"변화에 성공하기 위한 절차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먼저 갖출 것이 도덕적 교육목적(moral purpose)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관계(relationship)의 개선이다. 도덕적 교육목적을 갖추는 것이 제1의 과제라면 제2의 과제는 관계의 개선이다. 모든 변화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표1] 도덕적 교육목적의 범위와 체계

도덕적 교육목적 실현의 최고 단계는 모든 개인에게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고 성취도 격차가 현격히 줄어들며, 학습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해 민주적이고 도덕성이 높은 지식기반 사회의 시민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도덕적 교육목적은 위 [표1]처럼 크게 여러 차원이 있다. 도덕적 교육목적 달성을 위한 리더십은 아래와 같이 4가지 차원 간에 경계를 허물고 상호적 관계를 맺으면 활발한 정보의 공유가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 학교(school) 차원의 도덕적 교육목적의 달성은 학교장이 안전하고, 신뢰가 높으며, 서로 협력하고 안정적인 배움의 환경을 만들어 모두가 바라는 바람직한 성과를 낼 때 관계와 신뢰도 향상된다. 신뢰는 장기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데 가장 소중한 도덕적 자원이 된다.

▷ 사회(society) 차원의 도덕적 교육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상부의 의사결정 주체들 간에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정보의 상호 공유는 지방정부, 중앙정부와 파트너십 관계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도 도움을 준다.

▶ 풀런의 도덕적 교육목적과 리더십의 5가지 요소

② 도덕적 교육목적은 과정과 결과 모두에 반영되어야 한다.

④ 도덕적 교육목적의 실현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학교변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풀런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교장과 교사와의 관계, 교사 상호간의 관계,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의 질이 높아지지 않고 학교변화는 성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학교문화의 총체적 변화를 의미한다. 도덕적 교육목적과 이념을 바탕으로 학교장의 도덕적 리더십을 키우는 것이 학교변화의 핵심성공요인인 것이다.

▶ 빈곤층 지역이면서도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9가지 학교개선 전략

② 공유리더십을 통해 모두를 참여시킨다.

④ 평가 데이터를 활용하여 학생의 성공을 돕는다.

⑥ 학습의 장애요인을 해결한다.

⑧ 개입이 필요한 아동을 확인하기 위한 시스템을 운영한다.

위 9가지 전략에는 도덕적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실제적인 전략이 다 담겨 있다. 특히 '⑨ 특수교육이란 일반교육 프로그램에서 성공하기 위한 과정으로 정의한다.'의 내용은 감동적이다.

• [고정관점(fixed mindset)] 아이들이 할 수 없는 과제를 용기를 내서 해보도록 장려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또 한 번의 실패 경험을 하게 할 필요가 없다. 몇 달 관찰하면 잘 할 아이와 못할 아이가 다 판별이 난다.

이상의 것들이 가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한다. 중앙정부부터 도덕적 교육목적에 충실한 교육시스템과 정책을 실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부의 중앙 통제 중심의 교육행정이나 의사결정 시스템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농어촌의 학교 교육과정까지 관리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중앙정부가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도덕적 교육목적에 충실한 교육을 하려는 사명감과 열정이 넘치는 교사들이 많다. 이들이 한결 같이 하는 요구는 모든 아동들에게 개별화 수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습량의 실질적 감축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사 1인당 학생수의 감축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학생도 포기하기 않을 수 있는 질 높은 통합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응중심개입(Response to Intervention: RTI), 보편적 학습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등의 접근이 필수적이다. 이런 것들은 개별화 수업을 위한 핵심요소다. 헌법 제31조 ①항의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서도 개별화 수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개별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는 질 높은 통합교육을 교육비전에 구체화하든가 입법화를 통해 예산을 확보하고 단계적으로 실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5. 맺음말

일차적으로 중앙정부가 나서서 교사들이 도덕적 교육목적에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아울러 중앙정부는 우리의 학교교육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무책임한 면이 많은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정의롭지 못하고 차별적인 교육에 대한 방조자들이다. 이제 더 이상 도덕적이지 못한 교육 시스템과 교육에 대해 눈감아선 안 된다.

• "개인별 맞춤 교육 없이 모든 아동을 자신의 잠재력만큼 개발해 주는 것이 가능할까?"

• "어떻게 해야 모든 아동들이 최소한의 성취기준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가?"

• "어떻게 아동이 낙오하기 전에 증세를 발견해 예방과 조기개입으로 낙오와 학습결손을 예방할 수 있을까?"

• "어떻게 하면 경쟁하기보다는 협력하게 할 수 있을까?"

• "어떻게 하면 대입전형과 상관없이 학교교육이 교육과정에 충실한 교육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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