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떠난 자리

이미 누군가 앉은 자리의 옆에 가서 착 붙어 앉는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옆사람이 이상해 하고 심지어는 불쾌하거나 불편해 하는 것이 느껴질 뿐이다. 하므로, 눈치가 없거나 신경이 안 쓰이면 무시하고 아무데나 앉으면 되겠으나. 이러한 행동양식은 말하자면, 가능한 한 사람 사이에 개인공간을 두려는 거다. 심지어는 그 가운데 자리에 낑겨 앉느니 안쪽으로 들어가 서서 가는 사람조차 있다. 이러고 한두 정거장 가다 보면 사람들이 내리므로 그때서야 옆자리가 빈 좌석에 가서 앉겠다는 심산이다. 따라서 옆자리가 비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한 칸 띄워 앉거나 아예 서서 가는 영국인이 있다고 하여 이를 인종차별이라고 볼 일은 아니다.

2015-07-15     김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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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씩 앉아서 여섯 자리 좌석이 차는 건 거의 예외가 없는 순서가 있는데, 복도쪽 순방향 또는 창문쪽 순방향이 일번으로 찬다(사진의 D 또는 F). 그 다음이 그 사람 한 칸 건너 순방향이다(D가 이미 찼다면 F, F가 찼다면 D). 이미 사람이 앉은 자리의 바로 옆자리나 바로 앞자리에 앉는 일은 일행 여러 명이 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적어도 출퇴근 시간에는 단 한 번도 못 봤다. 그 다음은 역방향의 한 자리가 찬다(A, B, C 중 하나). 그 역방향에 앉는 사람이 비어 있는 순방향 자리의 앞자리(즉, B)에 앉느냐 아니면 이미 차 있는 순방향의 건너편에 앉느냐(A나 C)에 따라 그 다음 좌석이 찬다만, 하여간 제일 늦게 차는 것은 가운데 낑겨 앉는 자리다(E 또는 B ). 나는 역방향을 아주 싫어하지만, 별 용쓰는 수 없이 대강 이 순서에 따라 앉는다. 따라서 차라리 늦게 타는 편이 나을 수도 있는 거지만.

이러한 행동양식은 말하자면, 가능한 한 사람 사이에 개인공간을 두려는 거다. 심지어는 그 가운데 자리(E 또는 B)에 낑겨 앉느니 안쪽으로 들어가 서서 가는 사람조차 있다. 이러고 한두 정거장 가다 보면 사람들이 내리므로 그때서야 옆자리가 빈 좌석에 가서 앉겠다는 심산이다. 따라서 옆자리가 비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한 칸 띄워 앉거나 아예 서서 가는 영국인이 있다고 하여 이를 인종차별이라고 볼 일은 아니다.

이런 식의 은근한 숨은 규칙이 있기는 하지만 저 순서를 외우라거나 규칙에 따르라고까지는 하기 어렵고, 다만, 아무리 잠깐 여행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 뿐이라고 하더라도 마치 장리빚 갚으러 지고 간 쌀자루를 몹시 못마땅하게 내려 놓듯이 풀썩, 앉아있는 영국인의 옆자리에 스스로의 몸을 요란하게 부려놓기조차 하는 것은, 좀 많이 좋지 않다. 옆자리의 영국인 및 주변의 영국인들은 그러는 외국인을 일제히 비난하는 눈초리로 볼 것이고, 어지간히 눈치가 없지 않고서야 그 눈초리를 느끼고서는 아 이 인간들이 왜 이러나, 하고 생각하며 여행 기분 확 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도 썼듯이 눈치가 없으면 꽤 괜찮다. 대개 영국인들은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뭐라고 하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여행객이 돌아간 자리에는 한국에 대한 인상과 그 인상을 지고 그 나라에 남아 살아가야만 하는 한국인들이 남는다. 그러니 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지내다 돌아가도록 하자. 그리고 만일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으면 sorry를 아끼지 말도록 하자. 영국인에게 sorry는 일종의 매직 워드라. 한국인들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식으로 sorry하는데도 화내는 영국인은 별로 없다. 뭐,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