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한 혐오표현 처벌? 차별금지법부터 만들라!

주지하다시피 혐오표현은 소수자 '차별'에 대한 문제다. 그런데 한국에는 차별금지법조차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보적인 수준의 차별금지법과 차별 시정 기구 구실을 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그나마 있는 법과 제도조차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현재 수준에서도 혐오표현에 대한 다양한 조치가 가능함에도 인권위는 요지부동이다. 유감스럽게도 국회가 이 문제를 집요하게 따지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한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국가들에는 차별금지법도 있기 마련이다. 차별 문제를 다루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마련해놓고, 더 나아가 차별을 조장하는 발언'도'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2015-07-13     홍성수
ⓒ연합뉴스

홍성수의 혐오시대유감

도드라지기 시작한 혐오표현 규제 논란

한국 사회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혐오표현이다. 이전에는 물리적 충돌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으나, 올해 퀴어축제에서는 부채춤, 난타, 발레 공연, 피케팅 등 '평화로운' 방법의 반대운동이 펼쳐졌고 큰 충돌 없이 축제가 마무리됐다. 혐오표현의 온상으로 지적되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사이트의 여러 게시물들은 그 내용이 심각한 문제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말'에 머물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혐오표현이 혐오범죄로 진화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에 예의 주시할 필요는 있지만, 어쨌든 현재 수준에서의 문제는 주로 혐오표현이다.

제16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6월 28일 기독교단체 회원 등이 행사장인 서울광장 인근에서 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0조 2항에 대해선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미국 등은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을 이유로 그 적용을 유보하고 있다. '인종차별 철폐 협약' 제4조 역시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미국 등에서 적용을 유보하고 있거나 제한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혐오표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에 국제적 합의 수준은 높지만, 각국에서 법으로 강행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가진 나라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국제 합의에서 '각 국가들은 혐오표현을 처벌하라'고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 의견 개진과 구분해야 할 '혐오표현'

혐오표현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발전해오는 사이, 각 국가들도 나름의 대책을 마련해왔다. 크게 나눠보면 '유럽의 길'과 '미국의 길'이 있다. 유럽 국가들은 대개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쪽을 택했지만,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불가침으로 여겨온 미국은 다소 다른 대책을 모색해왔다. 유럽 국가 중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벨기에, 덴마크,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등 16개국이다. 특히 이 중 12개국은 한국에서 최근 문제가 된 동성애에 관한 혐오표현 처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개 단순한 의견 개진을 넘어서는 선동을 처벌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 둘 사이의 경계를 구획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진술을 관련 법에 따라 처벌한 바 있고, 유엔에서도 이 처벌이 표현의 자유와 상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단순히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발언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영국은 공공질서법으로 인종이나 성적 지향에 대한 혐오를 자극하는 위협적·모욕적 표현을 처벌하고 있는데, 실제 처벌 사례들을 보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동성애 중단"(stop homosexuality)이라고 말한 전도사와 "동성애는 죄악(sin)"이라고 말한 목사가 무죄를 받은 사례도 있지만, 동성애에 대해 성경이 "혐오"(abomination)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 목사는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맥락에 따라 판결이 엇갈리고 있어서 일관성을 찾기 어렵고, 당연히 당사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물론 영국의 공공질서법을 한국에 적용한다면 동성애 반대세력의 발언 중 일부가 처벌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혐오표현 하면 회사서 '징계' 받는 미국

국내에서도 차별금지법안의 입법 움직임은 있었으나 보수계의 반발에 좌절됐다. 2013년 4월 국회가 차별금지법안을 철회하자 이에 항의하는 차별금지법안 찬성론자들의 모습. 한겨레 김정효 기자

한국에서도 혐오표현에 대한 나름의 대책이 마련돼왔다. 의외로(!) 국회가 혐오표현 문제에 대해 발 빠르게 대응해왔다. 2013년 여당 의원들 중심으로 인종 및 출생 지역을 이유로 한 혐오를 처벌하는 형법 개정안이 제출된 바 있고, 며칠 전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지역 감정, 종북 타령 등을 제재하겠다는 취지의 법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회가 혐오표현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입법이 추진되는 맥락을 보면 미심쩍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혐오표현 규제 입법은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문제를 필연적으로 야기하기 때문에 정교한 정당화 논리와 세심한 입법 기술이 필요함에도, '강력한 처벌'이 담긴 화끈한 입법만 앞서가는 모양새다. 이런 식으로 추진되는 입법은 표현의 자유 전반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쎈' 입법보다 우선되어야 할 기본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