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로 알게 된, 메르스보다 무서운 것들

당장 신종 전염병과 그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근절하는 데 무기력했던 주체들은 정치적 판단과 행동에서만 예민하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메르스가 우리나라를 공포에 떨게 만든 한 달 동안 우리는 갑자기 깨닫게 됐다. 정부는 무능하고 국민은 성숙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이 긴급 상황에서도 정부와 국민은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한참 못 났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메르스는 떠나겠지만, 이 무자비한 현실 인식이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무를까 무섭다.

2015-07-08     김방희
ⓒ연합뉴스

그 발언이 심상치 않게 들렸던 이유는 상황 인식 탓이었다. 질병이나 자연 재해 등 급변 사태에 대해서는 정부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 초기 당국자는 이미 최선의 시나리오만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 보였다.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부의 안이한 상황 인식이 그대로 병원과 의심 혹은 격리 환자들에게 전염됐다는 사실이었다. 병원은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 초기 확진 환자 소재 파악이나 격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의심 환자나 격리 환자들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해 자유롭게 이동하고, 대중이 모이는 곳에 들렀다. 다수가 마치 마취된 것처럼 설마 내가 걸렸겠느냐, 그렇게 감염시키겠느냐 하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물론 신종 전염병과 관련해 비밀과 공개 여부는 정책 판단의 여지가 있다. 나라나 사례별로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중동 지역과는 달리 병원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했다. 더욱이 거의 전국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용하는 요즘 이런 부류의 비밀을 지킬래야 지킬 수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 했다. 사태 초기의 정부의 대응 실패와 비밀주의 집착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 일로 키워버렸다. 2003년 사스 대처 당시와 비교하며 뒤늦게 지적된 컨트롤타워 부재는, 이를 반증하는 목소리였을 따름이다.

이 모든 일이 우리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키웠다. 그렇잖아도 이미 제조업과 수출 부진으로 허약한 체질을 보이는 우리 경제는 이 일로 예상보다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고질병이 있는 환자에 신종 괴질이 덮친 격이 아닐 수 없다. 메르스가 우리나라를 공포에 떨게 만든 한 달 동안 우리는 갑자기 깨닫게 됐다. 정부는 무능하고 국민은 성숙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이 긴급 상황에서도 정부와 국민은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한참 못났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메르스는 떠나겠지만, 이 무자비한 현실 인식이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무를까 무섭다.

* 이 글은 경인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