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거대 민어를 서울서 맛나게 먹는 방법(사진)

2015-07-08     박세회

“서울에서 이렇게 큰 민어 본 적 있어요? 길이가 110㎝가 넘어요.” 서울 마포구 ‘목포낙지’의 주인장 최문갑(46)씨가 자랑에 나선다. 민어는 92㎏ 거구의 남자라도 한 손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13㎏이 넘는 덩치다.

서울서 맛나는 민어를 잡는 남자

최씨는 파닥거리는 민어 앞에서 홍조를 띤다. 올해 5번째 ‘민어 해체쇼’ 도전이다. 본래 낙지 전문가였으나 몇 해 전 장어에 도전해보고는 더 큰 생선에 눈이 떠졌다. 그가 예리한 칼끝을 민어의 흑갈색 꼬리에 꽉 박는다. 푸드덕 민어의 머리가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것처럼 천장을 향해 튀어 오른다. 아가미를 따자 피가 솟구치고 줄줄 흐른다.

버릴 게 없는 생선 민어

몸통을 반으로 쩍 가르자 곱디고운 흰 살이 찬란한 빛을 발산하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최씨가 응축된 외마디를 지른다. “응응!!” 힘껏 민어의 등뼈를 도려낸다. 성인 팔만한 길이다. 뼈는 단단하고 크다. 힘이 필요하다. 임산부나 기력이 쇠한 이들에게 좋다는 민어탕의 재료다. 뼈를 폭 끓여야 마치 오래 끓인 사골처럼 진한 맛이 나온다. 등살을 오려내자 최씨가 “두께 한번 봐라” 말한다. 1㎝ 정도다. 도톰하고 담백한 민어회 맛이 여기서 나온다. 등살은 전이나 탕의 재료도 된다. 주로 회로 먹는 뱃살은 더 고소하다. 등살, 꼬리살, 뱃살, 늑간살 등 부위별로 맛이 다르다.

민어의 배를 가르자 내장이 쏟아진다.

얼추 1시간이 넘어간다. 최씨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는다. “처음에는 무섭기까지 했다. 워낙 크니깐! 생선처럼 안 보이기도 했다. ‘정성’을 담아 칼질하니깐 나아졌다.” 껍질 손질에 들어가자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이건 정말 우리 집만 있다.” 껍질은 보통 데쳐서 쫄깃한 맛을 즐긴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부위는 껍질이 아니다.

민어 껍질에 붙은 살을 최문갑씨가 잘라내고 있다.

민어는 생선 중의 생선

전국에서 수백명의 어부와 어선들이 고가로 일본에 팔려나가는 민어를 잡으러 몰려왔다. 돈이 몰리다 보니 홍등가나 술집들이 들어서고 일본에서 게이샤가 원정영업도 했다고 한다. 흥청망청 불야성이었다. 몰려든 민어 떼가 밤새 울어서 주민들이 잠을 설쳤다는 얘기도 내려온다. 지금은 파시의 흔적은 전혀 없지만 매년 7월쯤이면 임자도에서는 민어축제가 열린다. 신안갯벌낙지영어조합법인 대표 양태성씨는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오는 이가 많다. 우리 지역 대표축제인데 전국에서 온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말한다.

민어맑은탕.

민어의 민자는 ‘民’(백성 민) 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일반 백성들보다는 왕이나 고관대작들이 즐긴 고급 생선이었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연 밥상에도 민어자반이 등장한다. 숙종 때도 일화가 있다. 숙종은 여든이 된 우암 송시열에게 장수를 축하한다면서 민어 20마리와 조기 300마리를 하사했다. 송시열은 당대 최강 정치세력인 노론의 영수였다. 최대 정치계파의 우두머리에게 왕이 아부를 한 셈인데, 당시 민어의 가치를 알 만하다.

민어회.

민어가 금값인 이유

때 이른 더위로 보양식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여름보양식으로 일품이 민어탕(찜)이요, 이품은 도미탕(찜)이요, 삼품이 개장국이란 말이 있다. 12월께 제주도와 사천시(삼천포) 앞바다 등지에서 민어가 잡히지만 산란기를 앞둔 6월 말에서 9월이 제일 맛이 좋다. 수심 40~120m 바다, 펄(점토) 갯벌인 곳에 주로 서식하는 민어가 제철을 맞았다. 자고로 맛은 식재료가 80%, 요리사의 솜씨 20%라 했다. 해체를 끝낸 최문갑 사장은 “무조건 우리는 재료로 승부한다. 전남 신안에서 잡은 대어만 취급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 국립수산과학원 누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