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지도자의 닮은꼴 '배신의 정치'

박근혜 대통령이 6월25일 국무회의에서 오뉴월 서릿발같이 서슬 퍼런 모습으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한 '탄핵문'을 읽어내려갈 때, 1년 반 전 북한에서 벌어진 일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바로 2013년 12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그의 고모부이자 제2인자였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전격 숙청·처형한 사건이다. 북쪽의 <조선중앙통신>이 장성택이 처형된 뒤 내보낸 장문의 '죄상 보도문'을 찾아 다시 읽어 봤다. 양쪽 지도자들의 인식과 태도의 유사함에 새삼 놀랐다.

2015-07-07     오태규
ⓒ연합뉴스

박 대통령의 발언을 들으면서 북의 장성택 사건이 자연스레 떠오른 건 스스로 '만인지상'의 절대적 위치에 있다고 여기는 지도자가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거나 반한다고 생각하는 아랫사람을 다루는 방식은 남이나 북이나 다를 게 없다는 학습된 육감이 작동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북쪽의 <조선중앙통신>이 장성택이 처형된 뒤 내보낸 장문의 '죄상 보도문'을 찾아 다시 읽어 봤다. 양쪽 지도자들의 인식과 태도의 유사함에 새삼 놀랐다.

정치권의 존재의 이유는 본인들의 정치생명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둬야 함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자 자기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하늘 아래에서 감히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 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 그가 누구이든, 그 어디에 숨어 있든 모조리 쓸어모아 력사의 준엄한 심판대 우에 올려세우고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다.

비록 남북의 배신자 처리법이 물리적 죽음과 정치적 죽음으로 확연히 갈리지만, 배신자는 반드시 보복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만은 엇비슷하다.

그러나 위안거리도 있다. 북쪽은 지도자의 눈에 벗어나면 정치적·물리적 목숨이 한꺼번에 소멸되는 체제이지만, 남쪽은 한 사람의 뜻에 따라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좌지우지되는 사회가 아니다. 박 대통령의 지침과 친박 세력의 일사불란한 작전수행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높게 나오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