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보다 무서운 인수공통전염병 방역체계

동물원 낙타들이 중동에 간 적이 없다고 해서 웃어 넘길 일 만은 아니다. 실제로 '인수공통전염병(Zoonosis)'에 대한 정부의 방역체계는 놀랄 만큼 허술한 경지에 와 있다. 메르스뿐 아니라 에볼라,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등 신종 전염병의 대부분은 동물과 사람 사이에 전이될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야생동물 수입 시 눈으로만 진찰하는 임상검사 외에 별다른 검역을 하지 않는다. 지난 5년간 우리나라로 수입된 야생동물 4만6354마리 중 질병에 대한 정밀검사(조류 인플루엔자)를 받고 수입된 동물은 2013년 중국 시진핑 수석에게 선물 받은 '따오기' 단 두 마리에 불과했다.

2015-07-01     이형주
ⓒ연합뉴스

서울대공원, 광주 우치동물원 등 살아있는 낙타를 전시하던 동물원들도 낙타를 격리조치했다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음성 판정을 받고 격리를 해제하는 웃지 못할 풍경도 벌어졌다. 낙타는 호주,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에서만 수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서울대공원, 광주 우치동물원 등 우리나라에서 전시되는 낙타 46마리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태어났거나 호주에서 수입된 개체들이다. 메르스에 감염된 사람이 일부러 동물원에 찾아가서 낙타에게 감염시키지 않는 이상 이 동물들이 감염 매개체가 될 가능성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동물원인데, 영문도 모르는 낙타들은 졸지에 골방 신세로 전락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군 '낙타 패러디' 포스터 중 하나 (출처: 온라인커뮤니티)

구멍 뚫린 야생동물 방역, 4만 6천 마리 중 정밀검사는 2마리에 불과해

메르스뿐 아니라 에볼라,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등 신종 전염병의 대부분은 동물과 사람 사이에 전이될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이다. 지난 6월 9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세계보건기구(OIE)의 브라이언 에반스(Brian Evans) 부사무총장은 "최근 20년간 새로 발생한 전염병의 70% 이상이 인수공통전염병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에반스 부사무총장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 지구 온난화와 같은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야생동물과 사람, 야생동물과 농장동물 간의 접촉이 증가하면서 신형 변종 전염병의 발생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메르스의 경우에도 박쥐에 존재하던 코로나바이러스가 낙타에 전이돼 사람에게 옮겨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신종 전염병이 아닐지라도 사람에게 감염되는 병원균 중 60퍼센트 이상이 동물로부터 전염된다.

동물과 접촉하는 '동물 체험', 인수공통전염병 감염 위험 커

돌고래와 같은 수조에 들어가는 '돌고래 체험장'도 성업 중이다. 해양포유동물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마이코플라즈마 감염증, 돈단독증, 브루셀라, 렙토스피라, 세균성피부염 등의 인수공통감염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애초에 수입할 때부터 감염 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동물들을 만지고, 동물들의 분변이 섞인 수조에 함께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울산 장생포 고래박물관에서 폐사한 큰돌고래의 폐사 원인은 돈단독(swine erysipelas) 감염인 것으로 확인됐다. 돈단독은 돼지, 소, 양, 닭, 해양포유류, 사람 등 광범위한 동물에게 전염되는데, 사람이 걸렸을 때 최악의 경우에는 전신패혈증에 걸릴 수도 있는 위험한 인수공통전염병이다.

한 주말 TV프로그램에서 방영한 '돌고래 체험' 장면. 돌고래와의 직접적 접촉과 분변 등을 통해 전염병에 감염될 수 있다. (출처: KBS2)

전염병 확산시킬 수 있는 '애완용' 원숭이 불법거래

작년 10월 SBS 에서는 집에서 기르다가 병에 걸려 야산에 유기된 '슬로우 로리스'에 대한 이야기가 방영됐다. 집에서 기르는 원숭이가 질병에 걸려 치료를 하려 해도, 야생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를 동네에서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생태적 습성상 반려동물로 기르는 것이 적합하지 않은 외래종 야생동물을 무작정 데려와 기르다가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유기하는 것은 동물에게 잔인할 뿐 아니라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자칫하다가는 전염병까지 확산시킬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SBS 동물농장에 방영된 슬로로리스. 백내장에 걸린 채로 유기되었다. (출처:SBS)

생태계 파괴는 이종간 전이의 원인, 근본적 대책 시급

또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가 '지속가능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건전한 생태계는 인간과 동물, 환경이 조화롭게 공존할 때 유지가 가능하다. 서식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도심에 살고 있는 야생동물들뿐 아니라 몸을 돌릴 수도 없는 '공장형 농장'에서 사육되며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약해져 버린 농장동물들도 구제역, 조류독감 등 전염병의 원인이 된다. 항생제의 남용으로 변이되는 '슈퍼 박테리아'의 공포도 무시할 수 없다. 병들어가는 생태계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없이는 앞으로 제2, 제3의 메르스가 언제 찾아올는지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