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스스로 팔 자른 방글라데시 여공, '삶은 계속된다'

2015-03-12     박수진

일순간 정전과 함께 9층짜리 건물이 폭삭 주저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로지나(24·여)씨는 잔해더미 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무언가 잡아당긴 듯 다시 쓰러졌다. 눈과 코를 찌르는 메케한 먼지 사이로 왼팔을 짓누른 철근이 어슴푸레 시야에 들어왔다. 피가 통하지 않는 팔은 이미 차갑게 핏기를 잃고 푸르스름하게 변했다. 한시바삐 탈출해야 하는 상황. 사람들이 로지나씨를 구하려고 애를 써도 철근을 제거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밖에서 '철근 때문에 구할 수가 없으니 팔을 자르고 나오라'며 칼을 밀어 넣어줬다. "팔을 직접 자르라고?" 그 순간 7살 난 딸 사디아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는 피비린내 속에서 몇 번이고 까무러치기를 반복하다 결국 스스로 자신의 왼팔을 잘라 내고 탈출했다.

로지나씨 가족

그녀의 품에는 생후 4개월 된 둘째 딸이 안겨 있었다. 사고 이후 부부에게 찾아온 새 생명이었다. 로지나씨는 칭얼대느라 눈물범벅이 된 딸의 얼굴을 성한 오른팔로 연방 닦아내리며 "사고는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에도 혼자 머리도 못 감고 아기도 돌보지 못하게 돼 스스로 비참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하늘하늘한 쑥색 전통의상 사이로 뭉툭한 왼팔이 살짝 보였다. 로지나씨는 사고로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지만 아름다운가게가 제공한 심리치료를 받으며 안정을 되찾았다.

사고 직후 병원에 입원한 로지나씨

사고 이후 현지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안전수칙을 마련하는 등 뒷북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자와 가족에게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통역을 맡은 현지 시민단체 '보이스'(VOICE)의 관계자는 "정부에서 붕괴된 건물 잔해를 일찍 치워가는 바람에 찾지 못한 시신은 여전히 실종 상태로 남았고 유가족들은 보상금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로지나씨는 사고보상금 100만타카(한화 약 1천400만원)를 받았지만 정부는 이를 은행에 넣어두고 월 9천타카씩만 쓸 수 있게 했다. 9천타카에서 월세 3천500타카를 빼고 나면 두 딸의 양육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하다. 남편은 사고 이후 아내를 간호하느라 일을 그만둬야 했다. 남편은 지금도 아내 대신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 하고 있다. 로지나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허름하고 단순한 일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라나플라자 붕괴 현장

"사고로 인한 고통도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가 고민"이라면서도 "남편과 작은 식료품 가게를 내고 두 딸을 잘 교육해 의사로 키우고 싶다"고 말하는 로지나씨의 눈은 밝게 빛났다.

아름다운가게는 한국국제협력단과 함께 의류공장 붕괴 직후 긴급구호부터 시작해 지난 2년간 피해자들의 심리치료와 자활을 도왔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기업 '뷰티풀웍스'를 세우고 피해자들에게 봉제기술 등을 가르쳐 에코백을 생산, 오는 4월 한국과 방글라데시 양국에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아름다운가게 나눔사업팀 황현이 팀장은 "방글라데시 빈민 가정은 대부분 사고 이후에 실업과 병원치료 등으로 더 심해진 가난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로지나 가정은 교육에서 희망을 찾은 매우 모범적인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