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남성'이라는 서사를 위해 죽임당하는 여성들

"남성은 살해되는 것보다 비난받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주인공 역할에 익숙해,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2018-07-23     곽상아 기자
ⓒPRISCILLA FRANK/HUFFPOST

실종된 에이미 던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편 닉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더 유력한 용의자로 보인다. 미국의 악몽 두 가지가 젠더에 따라 배정된 양상이다.

로자먼드 파이크와 벤 애플렉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질리언 플린의 2012년 베스트셀러 ’나를 찾아줘(Gone Girl)를 읽은 작가 앨리스 볼린(Alice Bolin)의 감상이다. 볼린은 새로 발표한 책 ‘Dead Girls: Essays on Surviving an American Obsession’에서 현대 미국 느와르의 전복적 메커니즘을 논한다. TV, 문학, 영화, 심지어 음악에서까지. 왜 미국 문화는 여성 캐릭터를 차가운 시체로 등장시키고 싶어하는지를 탐구하는 책이다.

ⓒ영화 '나를 찾아줘' 스틸컷

‘나를 찾아줘’의 출발점이 바로 거기다. 예쁘고, 완벽하고, 비극적으로 너무 젊은 나이에 떠나버린 실종 여성은 유령 같은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스포일러가 있긴 하지만 6년 전에 나온 책이니 괜찮지 않을까) 에이미는 생생히 살아있음이 드러난다. 원한을 품은 에이미는 놀라울 정도로 교묘하게 덮어씌우는 플롯을 사용해 실망스러운 남편을 ‘아내 죽인 살인범’으로 만들려 했다.

에이미의 내면은 분명 속속들이 썩어있지만, 볼린이 읽기로는 둘 중 더 “규탄받아야 할 범주”를 체화한 쪽은 남편 닉이다. 볼린에 의하면 에이미는 “이 세상에 존재했던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지만”, “닉과 같은 남성들이 떠올리는 악몽 속의 여성과 닮아있고, 세상엔 그런 남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인셀(비자발적 순결주의자) 문제가 터지고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여성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성의 복수인 경우가 많음도 밝혀지고 있다. 이 책은 묘하게도 이를 예지한 듯이 느껴진다.

볼린은 소설 속 (사랑받는) 여러 남성 캐릭터들에서 이런 특징을 식별한다. 예를 들어 레이먼드 챈들러의 누아르 ‘빅 슬립’에 등장하는 탐정 필립 말로는 “자신의 직업에 시달린다고 느끼고” 자신이 “타락한 순수한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에서 ‘예의 바르고 착한’ 소년이라고 묘사한 엘리엇 로저를 보라. 그는 22세 때 캘리포니아주 이슬라 비스타에서 6명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사람들은 나를 애처롭게 여겨야 한다. 내 삶은 너무나 불쌍했다. 이를 겪도록 강요한 세상을 나는 증오한다. 나는 나 자신이 애처롭다.” 2014년 학살을 저지르기 직전에 그가 배포했던 성명 내용이다.

“여성은 아무리 특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갑자기 현실을 깨닫게 된다. 희롱, 묵살, 무시가 흔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강한 보호와 격리를 받으며 자라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갑자기 현실을 깨달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다 폭력적 행동까지 저지르게 될 때면, 고통받는 사람과 범인 사이의 경계선은 이미 흐려진 뒤다. “그들은 자기 마음속으로는 피해자다.” 볼린의 말이다. 

픽션의 남성 캐릭터들은 ‘영웅’과 ‘악당’이라는 이원성의 균형을 잡도록 만들어지기 때문에, 독자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복잡함이 가득하다. 오해받고 간과되는 것은 인간 경험의 보편적 요소이므로, 우리는 결함이 있는 남성 히어로와 안티 히어로에 공감한다.

그러나 죽은 소녀들은 픽션의 막을 올리기도 전에 죽곤 한다. 죽은 이후로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대상으로 취급받는다. 우리는 남성 캐릭터가 여성혐오를 하더라도, 비록 폭력적이거나 잔인하더라도, 그에 대해 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죽은 소녀’는 소품이고, 그들의 고통은 볼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죽은 소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다. 도덕적으로 시선을 떼야 한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로라와 같은 ‘죽은 소녀들’은 캐릭터라기보다 대상이다. 반면, ‘나를 찾아줘’의 닉 던 같은 ‘착한 남성’은 신뢰받는 화자 역할에 익숙하고, 그보다 못한 역은 맡으려 들지도 않는다. 볼린은 이 세상에서 닉 던 같은 사람들이 범죄의 책임을 덮어쓰는 걸 두려워하는 이유는 물리적 처벌 때문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착한 남성’들은 자신이 만들어 낸 자신의 서사와 반대되는 서사를 떠안는 것을 너무도 두려워한다.

Glamour와 GQ의 최근 조사에서 현실의 남성 중 84%는 “잘못된 성적 언행에 대한 비난이 욕먹을 이유 없는 남성들의 평판을 해칠까 봐 걱정된다”고 답했다. 닉과 같은 남성들은 에이미와 같은 여성들에 대한 공포를 잔뜩 품고 있다.

남성들은 주인공 역할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어, 존재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경험에 대한 궁극적 권위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 된다.

소위 ‘착한 남성’들은 현실과 픽션 속 내러티브의 상당한 공간을 차지한다. 볼린은 자신의 책 ‘Dead Girls’에서 플린과 비슷한 시도를 한다. 죽은 소녀라는 친숙한 이미지로 시작한 뒤 그 소녀를 되살려 낸다. ‘남편이 저질렀다’, ‘죽은 소녀를 보여주는 것에 대한 이론’ 등의 챕터를 거친 뒤, 볼린은 보다 생기 넘치는 여성들의 전형을 분석한다.

“이 책을 읽고 죽은 소녀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으리란 걸 안다. 나는 사람들이 죽은 소녀에게만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볼린은 근본적인 이야기로 넘어간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다. 그녀는 모스크바와 아이다호에서 자라고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 던처럼 볼린은 자신의 내러티브를 스스로 형성하고, 스토리텔링을 생존 모드로 프레임 지을 수 있는 능력에서 힘을 이끌어냈다. 성인이 되어가는 그녀를 형성한 문화적 영향을 논하며 다른 여성 전형들을 소개한다. 탐정인 딸, 거친 딸, SM 아티스트인 딸, 십대 마녀인 딸 등이다.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후반부에 가면 ‘Dead Girls’는 더 이상 죽은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볼린은 생존 가이드와도 비슷한 것을 제시한다. 실제 여성과 상상 속 여성들을 신화적인 모델로 삼아, 그녀들의 삶 속의 ‘착한 남성들’을 앞지르는 기술을 보여준다. 볼린은 여성들이 글쓰기, 섹스, 아트, 마술, 사랑을 통해 힘을 얻는 방법들을 탐구한다. 물론 독서도 그중 하나다.

서문에서 볼린은 자신이 ‘모든 것을 책에서 배우려고’ 고집 피우는 것이 ‘치명적 결함’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을 때쯤이면 독서가 볼린의 생존을 도왔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기사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