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에서 문대통령 겨냥한 극단적 혐오구호가 터져나온 이유와 의미

"문 대통령, 재기해"

2018-07-09     손원제
ⓒ뉴스1

″문 대통령은 재기하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연단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여성이 ”문재인 대통령도 재기십시오”라고 규탄하자, 참가자들 사이에서 일제히 ”재기해, 재기해”라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이날 집회에는 경찰 추산 1만8000명, 주최 쪽 추산 6만명이 참가했다.

‘재기하라‘는 말은 2013년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마포대교에서 투신해 사망한 사건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후 ‘메갈리아’ 등 여성 사이트에서 이를 희화화해 반여성주의적 남성을 공격하거나 조롱하는 은어로 사용돼 왔다. 문 대통령을 겨냥해 ”투신해 목숨을 끊으라”고 규탄한 셈이다.

‘굿모닝충청’에 따르면, 이날 이 단어를 처음 제기한 여성은 ”저희는 합법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들의 분노를 표출하고 대통령의 문제된 발언을 폭로하게 되었다”며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희가 말하는 ’제기해‘는 사전적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도 제기하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재기하라‘고 직접 요구한 것은 아니라는 자락을 깐 것이다. 하지만 맥락상 실제로는 ‘재기’라는 의미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매일경제가 전했다. ‘곰’은 문재인 대통령의 성인 ‘문’을 뒤집은 것으로,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문 대통령을 비하하는 용도로 써왔다. 여성 인권 집회에서 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극단적 혐오 구호와 극우 집단에서 유래한 단어가 한꺼번에 등장한 것이다.

이들이 문제삼은 것은 문 대통령의 3일 국무회의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수사기관의 ‘성차별 편파수사’ 논란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편파수사라는 말이 맞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처리를 보면 남성 가해자의 경우에 구속되고 엄벌이 가해지는 비율이 더 높았다. 여성 가해자인 경우는 일반적으로 가볍게 처리됐다. 그게 상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이 여성에 대한 편파 수사 문제를 왜곡하고 일방적으로 남성을 편들었다며 규탄을 쏟아낸 것이다.

이들은 문 대통령이 당시 ”여성들의 성과 관련된 수치심, 명예심에 대해서 특별히 존중한다는 것을 여성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여성들의 원한 같은 것이 풀린다”고 말한 점도 비판했다. 여성들의 정당한 분노 표출을 ‘원한’이라는 단어로 좁혀 규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뉴스1에 따르면, 이들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하며 여성의 표를 가져가 당선된 문 대통령은 저희를 더이상 실망시키지 말라”며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특히 이번 집회의 직접적 계기가 된 ‘홍익대 누드모델 사진 유출 사건’의 경우 피의자인 여성 모델을 구속하고 포토라인에 세우는 등 이례적인 방식으로 경찰 수사가 진행돼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구체적 사례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를 외면한 채 ‘일반적인 처리 현황’ 등을 들어 현실을 왜곡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에 따르면, 실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문 대통령의 발언이 적절치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진희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문 대통령이 혜화역 시위를 두고 ‘여성들의 원한을 풀어야 한다’고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자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은 굉장히 잘못됐다”며 “여성들을 달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과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사회 구조를 바꾸겠다는 메시지를 냈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당시 “우리사회가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 등 여성들이 입는 피해의 무게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며 “몰카 범죄 및 유포에 대한 처벌이 너무나 가볍고 너무나 미온적이라는 것이 여성들의 문제의식”이라고 말하는 등 여성들의 불안과 불만을 어느 정도 대변했다는 점을 들어, 집회 참가자들도 한 면만을 보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도 한쪽에서 나온다.

매일경제와 한 통화에서 ”시위가 남성혐오화되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대화를 본질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대부분 여성이 일상적인 공포를 경험하고 있음에도 수사기관의 대처가 미온적이고 지지부진하다는 것을 알리는 시위의 순기능을 저해하고, 제도화·법제화 등 실질적인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게 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