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연애의 일부가 아니다

이름을 알만한 진보적 논객의 데이트 폭행에 대한 폭로가 있었고, 그에 따른 설왕설래가 있었다. 이 사건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3자의 입장에선 차분히 두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적인 이야기를 왜 까발리느냐, 왜 둘이 해결하지 못하고 시끄럽게 구느냐, 는 이야기를 몇 번 읽었다. 그에 찬성하는 반응도 많았다. 이야기가 둘이 사귀었다더라, 헤어졌다더라, 의 문제를 넘어서 폭력에 관한 폭로로 넘어가면, 이는 더 이상, 단순한 남녀상열지사의 문제는 아니다. 서로의 합의 하에 벌어지는 SM 플레이의 경험에 대한 상세 까발림도, 상대의 성격적 결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거다. 폭행이고, 상해에 대한 것이라고.

2015-06-21     김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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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한 사무라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네 명이 그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는 다 다르다. 한 죽음에 관한 네 가지의 설명. 명백한 하나의 사건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설명조차 다 다를진대, 두 사람의 감정과 그에 얽힌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나 구구하게 다른 설명들이 가능하겠는가.

길게 썼지만, 말하자면,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남녀상열지사는 본인들만이 안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본인들 사이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그거 참 좋겠지. 조용히. 남 시끄럽지 않게. 가능하면 우호적으로. 그러면 세상도 고요하고 본인들 면도 안 상한다. 훨씬 좋다. 그러나.

이야기가 둘이 사귀었다더라, 헤어졌다더라, 의 문제를 넘어서 폭력에 관한 폭로로 넘어가면, 이는 더 이상, 단순한 남녀상열지사의 문제는 아니다. 서로의 합의 하에 벌어지는 SM 플레이의 경험에 대한 상세 까발림도, 상대의 성격적 결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거다. 폭행이고, 상해에 대한 것이라고.

이러한 성격의 폭력,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을 공개적으로 들고 나온 피해자에게(본인의 평판 역시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여야만 하는데), 왜 둘 사이의 일을 둘이서 조용히 해결하지 않느냐고 하는 것은, 일견 공정한 듯한 발언이지만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든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어쩌면 거의 유일한 수단을 막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피해자는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권리 행사를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위에 쓴 바와 같다.

가정 폭력도 데이트 폭력도 마찬가지다. 범죄라는 거다. 사실관계를 모르니 제3자로서는 사건의 추이를 차분히 객관적으로 보자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왜 남부끄럽게 남녀 간의 일을 세상에 대고 떠드느냐고 한다면, 이는 부당하다. 필요한 것은 이미 시끄러워진 사건을 당사자 간의 스캔들로 한정하여 소비하지 아니하고 사회적 논의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