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무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재 상황을 정리해보자

트럼프 흔드는 '검증 원리주의자들'의 정체?

2018-05-09     허완
ⓒNICHOLAS KAMM via Getty Images

지난 월요일(7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북미 정상회담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미국 전문가들이 “80% 이상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워싱턴 방문 결과를 소개하면서다.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문 특보는 새로운 단어를 꺼냈다. ”미국의 검증 원리주의자들”이 그것이다. 문 특보와 함께 워싱턴에 다녀온 김종대 정의당 의원도 같은 날 t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표현을 언급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형성된 배경에는 바로 이들이 있다는 것.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 5월8일)  

ⓒSAUL LOEB via Getty Images

 

지난 며칠 동안에 벌어진 일들을 보면, 무언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5월2일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기존에 쓰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표현 대신 ‘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PVID)’ 거론.

5월4일 :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북한의 ”모든 핵무기,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와 이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포함한 북한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폐기” 언급. 

5월5일 : 미국 국무부,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어떤 위성 발사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들의 명확한 위반이 된다.”

5월6일 : 북한 외무성 대변인,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5월7~8일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40여일 만에 2차 ‘파격’ 중국 방문 및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5월9일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40여일 만에 전격 북한 방문 

ⓒKCNA KCNA / Reuters

 

북한과 미국은 비핵화 협상 조건을 놓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추가 조건을 내걸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자 북한이 이에 반발하며 긴급하게 중국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주목할 부분은 일사천리로 협상을 진행할 것 같던 트럼프 정부의 협상 기조가 달라진 이유다.

강경파든 온건파든 관계 없이’ 미국 내 대다수 전문가들이 품고 있는 두 가지 불신을 그 이유로 꼽는다. 북한에 대한 불신,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다.

문정인 : “지금 계속 논란 중이라고 봐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 사람들도 김 위원장이 변했다고 하는 것은 인정하는데 전략적으로 변한 건지, 전술적으로 변한 건지 확신하지 못한다. 정말로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다. 북·미 정상회담도 70~80% 미 전문가들은 회의적으로 본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북한에 대한 불신이고 다른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이다.” (경향신문 5월8일)

ⓒYURI GRIPAS via Getty Images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정부가 ‘검증 원리주의자들’을 비롯한 회의적인 여론을 달래기 위해 강경한 입장을 슬쩍 흘렸을 뿐이라고 김 의원은 분석했다. ”다분히 여론을 의식한 발언”이라는 것.

진행자 : 그러면 미국 안에 강경파, 지금 의원님 표현대로 하면 검증원리주의자들을 달래기 위한 발언이다, 이렇게 읽고 계시는 겁니까?

김종대 : 그렇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북한이 완전히 무장해제를 하고 모든 걸 서방세계에 국가를 통째로 내주다시피, 이럴 정도의 행동을 해야 만족하겠다는 원리주의적 사고가 워싱턴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에서 우선 설득이 좀 시급하지 않느냐?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 5월8일)  

 

전문가들의 ‘훈수’를 크게 신경쓰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해왔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부터가 모두를 놀라게 만든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결정 덕분이다. 미국 내 회의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판 자체를 깨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다시 ‘CVID’라는 표현을 썼다. 며칠 전 새로 언급한 ‘PVID’가 한층 강경한 입장이라는 평가가 나왔던 것을 고려하면 다시 기존 입장으로 돌아갔다는 해석도 가능한 부분이다.

이어 폼페이오 장관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한층 유화적인 발언을 꺼냈다.

말했다. 

ⓒSAUL LOEB via Getty Images

 

물론 비핵화 방법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견해차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볼 근거는 아직 없다.

빅뱅 어프로치’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이 이미 밝힌 핵·미사일 시험 중단 만으로는 제재 해제를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은 단계적으로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미국이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단계적·동시적 해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한 이란 핵협정과 유사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트럼프 정부가 실패한 사례로 꼽는 과거의 북한 비핵화 협상과 비슷하다는 문제도 있다. 비핵화가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섣부르게 경제 지원을 했고 북한은 결국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것.

잘게 세분화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재차 분명히 했다. 

일단 공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이 ‘협상 조건을 다시 낮췄으니 대신 미국이 제안하는 비핵화 방법을 수용하라’고 북한을 설득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최근의 강경한 입장은 일종의 협상 카드 였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이를 전격적으로 수락하면 북미 정상회담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핵·미사일 폐기, 북미 수교, 제재 해제,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등의 조치들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것.

진심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고 싶어한다는 게 사실이라면, 어느 정도 양보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어보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