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올라도 당신 월급이 제자리였던 이유

2018-01-25     백승호

울산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아무개(58)씨는 최저임금 인상을 앞둔 연말마다 노동시간이 줄어든 새 근로계약서를 받는다고 했다. 급기야 올해는 하루 1시간인 휴게시간을 오전·오후 각 30분씩 추가로 만들어 노동시간을 7시간으로 정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노조 반대로 휴게시간을 늘리는 계획은 무산됐지만, 학교와 용역업체는 대신 휴일노동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 달 17만원 정도 휴일수당이 사라져 최저임금 인상분 한달 22만원 가운데 5만원 정도만 손에 남는다. “남들이 보기엔 얼마안되는 몇 십만원일지 모르겠지만 최저임금이 오르는만큼 임금이 올라야 내 임금으로 생활을 책임지는 우리 가족도 먹고 살지요.” 이씨의 한숨이 깊어졌다.

최근 몇년새 최저임금 인상으로 시간급 기준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사업주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월급 기준으로 따지면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거의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최저임금 꼼수 인상 사례가 이어지지만, ‘노동시간 단축’ 역시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성 연구위원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25~54살 노동자들이 중간 임금 일자리인 제조업 생산직과 사회복지서비스업으로 대거 빠져나갔고 이 영향으로 저임금 노동 공급이 정체됐다”며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인력이 귀해진 데 더해 최저임금 제도가 결합해 시간당 임금상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주당 36시간 미만 일한다는 단시간 청소노동자 비중이 2008년 27%에서 2014년 40.8%로 크게 증가하는 등 노동시간이 줄어든 영향”으로 분석했다.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기준으로 보면, 청소노동자의 월 평균노동 시간은 2009년 189시간에서 2015년 169시간으로 줄었다. 실제로 연구진이 2016년 청소노동 사업장 576곳 사업주에게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2013년부터 4년동안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노동시간을 줄인 적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113곳(19.6%)에 달했다.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 뒤, 사업장들이 초단시간 노동자로 대체(고려대·연세대 등), 노동시간 단축(이마트 등) 등으로 응수한 것과 맞닿아 있는 양상이다.

특히 노동시간을 줄인 업체 중 72.6%(82곳)는 ‘회사에 나와있는 노동시간은 그대로인데 휴게시간을 늘렸다’고 응답했다. 성재민 부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어느정도의 노동시간 감소 자체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 하더라도 휴게시간만을 늘린 노동시간 단축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며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식이 아닌 대안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인사 컨설팅을 지원하는 등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손승환 공공운수조노 서경지부 조직부장은 “특히 노동조합이 없거나, 1년단위 계약을 맺는 용역업체 청소·경비 노동자의 경우 소정근로시간을 줄인 근로계약서를 고용유지와 맞바꾸며 억지로 동의하는 사례가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노동시간 단축은 필요하지만, 최저임금을 받으며 생계를 꾸리는 노동자의 주 40시간 노동까지 줄여, 임금인상을 가로막는 형태로 나타나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