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로 '월경컵' 허가 받아낸 소셜벤처의 이야기

2018-01-07     곽상아 기자

지난 12월7일 국내에선 처음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은 ‘생리컵’(월경컵)이 탄생했습니다. 생리컵이란, 질 내에 삽입해 생리혈을 받아내는 제품인데요. 의약외품으로 분류된 생리컵을 유통·판매하기 위해선 사전에 품목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동안 국내에선 생리컵을 살 수 없어 소비자들은 ‘해외직구’ 등을 통해 구입해야 했는데요. 이르면 올해 2월부터 국내에서도 생리컵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미국 펨캡의 생리컵 ‘페미사이클’을 수입해 국내 첫 품목허가를 받은 소셜벤처 ‘이지앤모어’ 안지혜 대표에게서 지난 1년여간의 과정을 들어보았습니다.

이지앤모어 창업 초기, 우리가 제공한 서비스는 소비자가 일회용생리대를 구입하면 같은 양만큼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생리대를 기부하는 방식이었다. 여성들은 매달 필수적으로 생리대를 구입해야 하니 구입과 동시에 기부가 된다면 지속가능한 지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소비자가 기부할 생리대 가격까지 부담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재구매율이 하락했고 매출은 떨어졌다. 기부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여성들이 겪을 경제적 부담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월경 문제를 해결해주는 서비스 혹은 제품을 제공한다면 지속가능한 월경용품 지원도 가능할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여성들을 만나고, 설문조사를 하면서 중요한 월경용품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이지앤모어가 연 ‘우먼스데이’ 행사에 참여한 여성들이 50여종의 월경컵을 직접 살펴보고 있다.

국외에는 신기한 월경용품들이 가득했다. 월경컵·해면탐폰·스펀지탐폰·월경팬티…. 미국의 경우 탐폰이 월경용품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질 안에 삽입하는 제품이 많았다.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월경컵은 국외에서 5~6년 전부터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었고, 세계적으로 20개가 훌쩍 넘는 브랜드가 있었다. 그동안 국내에서 월경컵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질 안 삽입형 월경용품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또다른 문제가 있었다. 2016년 국내에서 월경컵을 제조·판매하다 중단한 업체를 찾아갔다. 이 업체는 식약처로부터 월경컵 판매는 위법이며 판매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받았다고 했다. 왜 월경컵 판매가 위법인 것일까?

이러한 임상실험은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월경컵이 인체에 사용해도 무해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었으므로, 맨 처음 월경컵을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회사만 진행하면 된다. 식약처에서 제시한 임상실험 방식은 피실험자 50여명이 6개월 주기로 월경컵을 사용한 뒤 인체의 변화를 보는 것이었다. 여러 업체에 확인해본 결과 실험 비용만 최소 1억원이었다. 여러해 사용할 수 있는 월경컵 특성상, 한번 판매가 이뤄지면 재구매율이 낮아 투자 대비 수익을 창출하기 어렵다. 월경컵과 유사한 탐폰의 경우 국내 월경용품 전체 시장의 17% 정도만 차지하고 있어 월경컵 시장성도 불확실했다. 이러한 까닭에 어느 업체도 월경컵 품목허가를 받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말 식약처로부터 첫 품목허가를 받은 생리컵인 페미사이클.

굳이 ‘페미사이클’을 수입한 까닭

그렇게 우리는 페미사이클 수입 준비를 시작했다. 식약처에 허가를 신청함과 동시에 새로운 고난이 닥쳐왔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은 너무 생소했고 단어는 어려웠다. 여러 대행업체들에 상담을 받아봤지만 ‘알아보겠다’는 답변이 많았고, 수수료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직접 서류를 준비하기로 했다. 식약처에서 요청하는 자료가 생길 때마다 해당 자료를 찾고, 미국 펨캡사에 요청·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또 미국에서 받은 자료만으로는 식약처에서 요청한 안전성을 충족시키지 못해, 국내 연구기관에 실험을 의뢰하기도 했다. 이 실험 자료를 토대로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도대체 감이 잡히질 않았다. 좌절하고 있는 우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블랭크컵 프로젝트’를 보고 품목허가를 받기 위한 서류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며, 자원봉사를 해주겠다는 전문가가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값진 도움을 받은 끝에, 2017년 12월7일 국내에선 처음으로 월경컵에 대해 품목허가를 받았다.

안전성 확보, 앞으로가 중요하다

‘왜 너희는 월경·월경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니?’ 많은 분들로부터 받는 질문이다. 우리는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월경을 감추기 위해 ‘그날’ ‘마법’과 같은 신비한 단어로 월경을 감춰왔다. 생각을 해보면 눈물을 흘리는 것, 콧물을 흘리는 것, 방귀를 뀌는 것 모두 생리 현상이다. 그럼에도 눈물·콧물이라는 이름이 불린다. 하지만 월경은 생리 현상이라는 단어의 줄임말인 ‘생리’, 그리고 이를 더 숨기기 위한 단어들로 불려왔다. 이런 사회적 인식 속에서 여성들의 월경 문제, 생리대 문제가 감춰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월경이라는 이름을 찾아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여성들의 문제를 좀더 세상 밖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