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릴 권리'에 대해 말하는 영화 '피의 연대기' 감독을 만났다

2018-01-07     곽상아 기자

“이 피가 내 피다, 나 지금 생리한다. 왜 말을 못하냐구!!!”(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패러디)

영화 <피의 연대기>는 한 마디로 ‘생리 위키피디아’, ‘생리 도감’이라 칭할 만한 영화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김보람(31) 감독을 마포구 상수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보람 감독

영화의 시작은 네덜란드 친구 샬롯이었다. “전 생리대 외에는 써 본 적이 없는데, 샬롯은 초경 때부터 탐폰을 썼대요. 한국에선 ‘질 속에 무언가를 넣는 것은 께름칙하다’고 생각하는데, 반대로 네덜란드에선 ‘축축하고 불편한 생리대를 어떻게 차고 다니냐’고 하는 거죠. 똑같이 한 달에 한 번 피를 흘리는데, 왜 그 방법이 문화권마다 다를까? 이 단순한 호기심이 출발점이었어요.” 검색하다 보니 마침 전 세계에서는 생리를 둘러싼 각종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NPR), 코스모폴리탄 등은 2015년을 ‘생리의 해’로 규정했다. 김 감독은 “아, 이참에 전 세계적으로 ‘커밍아웃’을 시작한 생리 이야기를 해보자”고 결심했다.

다큐 '피의 연대기'

듣고 보니 딱딱하고 어려울 것 같다고? 천만에! 어떤 극영화보다 유익하고 흥미롭다. 감독은 이해와 재미를 돕기 위해 영화 중간중간 애니메이션을 삽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무엇보다 생리가 좀 더 편안하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신경을 썼어요. 애니메이티드 다큐의 형식을 취했고 편집도 속도감이 있어 절대 지루하지 않습니다. 하하.”

일반인은 100명에게 인터뷰를 시도하면, 10명 성공하는 정도? 처음 섭외된 30대 기혼여성 2명이 인터뷰하고 나서 ‘결혼한 친구를 소개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아, 미혼여성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터부시돼 왔나 깨달았어요. 인터뷰는 거절했지만, 자신이 생리 때문에 겪은 경험이나 고통을 폭탄 카톡으로 보내는 여성이 많았어요. 역설적이지만, 그게 영화를 포기하지 않은 힘이 됐어요. 꼭 필요한 영화라는 확신.” 영화 속에는 감독의 할머니, 엄마, 이모들도 총출동한다. “아주 가깝고 편한 사람들과만 나누는 ‘밀담’이라 여기는 탓에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을 한꺼번에 섭외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단다.

“영화에서 생리혈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사실 생리혈 처리는 일상적인 것이고, 혼자 하는 것이잖아요? 머리에 액션캠을 달고 찍는 건 제작진 모두가 반대했는데, 제가 고집했어요. 모든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자 남성도 좀 알았으면 하는 장면이라서요.” 그는 이후 생리컵에 안착해 2년째 생리대를 쓰지 않는다. 또 “피 흘릴 방법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사랑하게 됐단다. “생리컵을 사용하면서 저도 처음으로 제 몸을 더 탐구하게 되고, 알게 됐어요. 작은 가슴이 콤플렉스였는데, 어느 순간 이것조차 나의 특색, 매력으로 여겨지더라고요. 개인적으로 한층 성장한 느낌이었어요.”

“생리를 이제 권리의 관점에서 볼 때가 된 것 같아요.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평생 400회 생리를 해요. 국가가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요?”

김 감독은 이 영화가 생리 문제에 관한 ‘인트로’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특히, 청소년 교육용으로 쓰이면 좋겠다”고 했다. 감독 말마따나 이 영화는 ‘시작, 도입’에 불과하다. 생리에 대해 더 신나게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자고, 좀 더 편하게 피 흘릴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니 자유롭게 선택하자고 영화는 말한다. 김보람 감독은 벌써부터 “이 발칙한 영화가 고전이 되는 그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