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의 선동술, 남남갈등과 여여갈등

남남(南南)갈등을 야기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번엔 여여(女與)갈등을 유발하고자 한다. 이들이 공격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 페미니즘이지만, 실제로는 진보정치 자체다. 대표적 타깃으로 여성가족부를 골랐을 뿐이다. 여성가족부를 흔들어 용어상의 후퇴를 이끌어내고, 그를 통해 페미니스트들이 정부를 불신하게 하는 전략이다

2017-12-20     노혜경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둘러싼 소음 속에서 소설 한 권을 다시 읽는다. 아서 쾨슬러의 소설 '한낮의 어둠'이다. 사회가 진보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우며 반동은 얼마나 쉽게 사람들을 흔들어놓는가. 레닌 혁명이 스탈린의 집권으로 결국 실패로 돌아가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 소설에서, 쾨슬러는 주인공 루바쇼프의 일기 형식으로 "대중의 상대적 성숙의 법칙"이라는 매우 중요한 생각을 써놓았다. 인민들이 지배하거나 지킬 수 있는 개인적 자유의 양은 이들의 정치적 성숙도에 달려 있으며, 대중의 성숙도는 또한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반드시 현실 사회주의 체제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선거로 눈부신 진보를 이루어낸 다음 밀려오는 이념적 백래시(backlash)를 보고 있으면 쾨슬러의 말이 얼마나 통찰력 있었던가를 깨닫게 된다.

최근 발생하는 소음 가운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페미니즘을 둘러싼 소음이다. 지난 대선은 페미니즘이 시대정신임을 널리 외친 선거였지만, 페미니스트를 표방한 그 정부의 여성가족부 앞에서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페미니스트는 변종 마르크시즘이니 "동성애 동성결혼을 옹호 조장하는 성평등 정책"이니 하며 공격하고 있다. 그 퇴행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구호는 얼핏 웃음을 유발하지만, 시위 당사자들을 넘어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 전체를 보면 편치 않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6·15 정상회담 이후 등장한 남남(南南)갈등이라는 프레임과 그에 기반한 종북몰이와의 유사성이다. 남남갈등론은 '퍼주기', '후진' 정책, '남북갈등 못지않은 남남갈등' 등의 허구적 수사법이 총동원되어 이념적인 "한낮의 어둠"을 우리 사회에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자는 다수를 오히려 소수파로 고립시켰다.

양성평등으로 번역하여 사용하던 유엔 인권헌장의 용어는 젠더 이퀄리티(Gender equality)다. 젠더라는 말이 여성과 남성을 가리킨다는 지식으로 양성평등으로 번역되던 용어가, 학술적 성과의 축적에 따라 다양한 젠더가 존재함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성평등으로 바뀐 것이다. 이들이 이런 사유를 몰라서 동성애 반대를 내세운다고 여기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이제 겨우 싹트고 있는 사상이고, 종북이란 말은 지속적인 오남용을 통해 한국인의 일부에겐 조건반사적 혐오를 일으키는 말이다. 페미니즘에 종북과 유사한 딱지를 씌워 고립시키는 데 성공하면 진보 정부의 중요한 지지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양성평등'과 '성평등'을 대립시키는 것은 일종의 대중적 착시, '상대적 성숙'을 이용하는 우파의 선동술일 뿐이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