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까지 주민등록번호가 적혀야 할 이유가 있을까?

2017-12-12     허완
Passport, Republic of Korea ⓒyongsuk son via Getty Images

지난해 중국으로 여행을 다녀온 ㄴ씨도 찜찜한 기억이 있다. 중국 입국심사 당시 심사관이 여권을 검사하며 “이 번호가 당신 주민등록번호냐”고 물은 뒤 번호를 적어갔다. 의아한 일이었지만 별다른 항의를 하지 못했다. 이후 공교롭게도 보이스피싱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고 한다.

실제 주민등록번호 또는 이와 비슷한 개인식별번호를 여권에 수록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스페인, 타이, 한국 등 6개 국가뿐이다. 미국·캐나다는 국가 차원의 신분증 제도가 아예 없고, 프랑스와 독일은 개인식별기호 대신 10년 동안 사용하는 한시적 신분증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통합형 개인식별번호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 자체도 극소수인 상황에서, 이 정보가 나라 밖으로 샐 수 있는 통로까지 열어두고 있는 셈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진보네트워크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이 2014년 1월29일 오전 서울 중구 무교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정보인권 침해하는 주민등록번호제도 진정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여권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삭제하는 여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여권의 본래 용도는 한국 국적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통용되는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법 개정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포르투갈은 ‘국민에게 단 하나의 고유번호를 할당하는 행위는 금지한다’고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을 정도로 개인식별정보를 정부가 일괄 관리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큰 일”이라며 “이를 여권에까지 기재해 해외 유출의 통로까지 만들어놓은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