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구 1 에릭남이 필요하다" 농담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유

2017-12-09     곽상아 기자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식목일입니다. 여러분의 댁에도 한 그루의 에릭 남을 심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속 대사를 떠올렸다.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거야. 길 가다 교통사고처럼 아무랑이나 부딪칠 수 있는 게 사랑이야. 사고 나는 데 유부남이, 할아버지가, 홀아비가 무슨 상관이 돼, 나면 나는 거지.” 그래. 얼굴의 윤곽이야 아무러면 어떤가. 그걸 셈하고 빠질 수 있다면 그게 사랑이겠는가.

‘사람을 올바르게 대하는 법’을 아는 남자

이나 콘텐츠업체 피키캐스트에서 인터뷰어로 활약하는 에릭 남을 보며, 인터뷰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자연스러운 대화의 기술과 늘 미소를 잃지 않는 얼굴에 매료되었노라 말하는 그들의 고백은 달달하고도 절절했다. 심지어는 인터뷰를 위해 에릭 남을 만난 월드스타들조차 에릭 남을 사랑했다. 평상시 씹기 좋은 군것질거리를 즐긴다는 어맨다 사이프리드를 위해 버터 오징어를 준비해 가고, 보스턴 출신인 맷 데이먼과 보스턴 레드삭스 이야기로 공감대를 쌓아가는 에릭 남은 확실히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심지어 제이미 폭스는 “인터뷰를 하려고 만났는데, 알고 보니 진짜 스타는 내 앞에 앉은 이 청년이네요!”라고 공공연하게 애정을 고백했다. “1가구 1에릭남 보급이 시급하다”는 인터넷 농담이 유행어가 된 상황, 이쯤 되면 에릭 남을 사랑하는 일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 같다.

에릭 남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덕목을 지녔다. 바로 “사람을 올바르게 대하는 법”에 대한 확고한 자기 기준이다.

상대를 넘겨짚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면,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 조심스레 경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에릭 남은 늘 상대에게 다가갈 때 신중하다. 심지어 그가 부르는 구애의 노래조차 그를 닮아서, 또래의 다른 가수들의 노래와는 가사의 결이 사뭇 다르다. 데뷔곡인 ‘천국의 문’에서 에릭 남은 상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거나 제 세계로 초대하겠다고 말하는 대신 “너에게 속한 세상이란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하고, ‘인터뷰’에서는 상대에게 무턱대고 제 진심을 알아 달라고 하는 대신 “우선 먼저 편하게 앉으”라고 권한다. 제 마음을 조심스레 말한 뒤 덧붙이는 말이 “실례가 아니었다면 좋을 텐데. 불편하지 않았다면 좋을 텐데”인 건,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에릭 남이기 때문이리라.

만화 캐릭터 ‘크리링’ 분장을 한 속사정

(SNL)에 출연했을 때 간디를 희화화하는 분장을 제안받자 단호하게 “다른 인종을 희화화하는 분장을 할 수는 없다”고 거절하고, 제작진이 인도 식당을 운영하는 홍석천 분장을 하자고 제안하자 “한국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인물인 홍석천을 희화화할 수 없다”고 거절한 끝에 만화 캐릭터 ‘크리링’ 분장으로 내용을 바꿨다는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런 순간은 어떤가? 팬들과 실시간 소통을 위해 라이브 방송을 하던 중, 누군가 차 뒷자리에 타고 있는 여자 코디네이터의 얼굴이 궁금하다는 댓글을 올렸다. 에릭 남은 자기 얼굴이 못생겼다며 얼굴을 가리는 코디네이터에게 다정하게 “뭐가 못생겨,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고 말하다가, 동행 중이던 남자 스타일리스트가 웃으며 “못생기긴 했지?”라고 말하자 급하게 정색하며 잘라 말한다. “야! 그러지 좀 마셔” 농담을 빙자해 타인의 외모를 함부로 평가하고 놀리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려 할 때, 에릭 남은 단호하게 ‘노’라 외친다. 상대를 존중하고, 남을 함부로 깔아내리거나 비하하지 않으며, 아닌 건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모습 때문에 에릭 남과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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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좀더 일찍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에릭 남은 하루아침에 괜찮은 남자가 된 게 아니고 데뷔 이래 늘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그러나 요즘 세상에 겉으로 보이는 매력이나 재능이 아니라 사람 자체에 호평을 내리는 건 얼마나 망설여지는 일인가. 좋은 사람인 줄 알고 지면 가득 칭찬을 하고 보면 몇 개월 뒤 그 사람이 잔뜩 물의를 빚는 광경을 보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망설여왔던 말을, 이제는 조심스레 해보려 한다.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주제로 방영되는 이번주 에스비에스(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에릭 남은 “성폭력은 여성만의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말하는 릴레이 멘트에 참여한다. 정말, 1가구 1에릭남 보급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