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이 문제다

문제는 한국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미국이 너무도 압도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북이 필사적으로 핵무기와 미사일에 매달리는 것은 압도적인 힘의 열세를 만회해보자는 것 아닌가.

2017-12-07     서재정

'내로남불'과 침소봉대가 문제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서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란다. 또 확대해석하고 과장하는 것도 오랜 버릇이다. 해서 위기는 끝을 모른다.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이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안보 딜레마라는 이름까지 붙여놓았다. 그래도 이 딜레마를 빠져나오지 못한다. '내로남불' 때문이다. 내가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은 '로맨스'이지만 남이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은 '불륜'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늘 한반도에 역지사지는 설 자리가 없다. 나의 '로맨스'가 남에게는 '불륜'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인식의 여유는 남아 있지 않다. 해서 압도적 힘을 추구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 모두의 로맨스다. 북의 핵·미사일은 우리 모두의 불륜이다.

문제는 한국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미국이 너무도 압도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북이 필사적으로 핵무기와 미사일에 매달리는 것은 압도적인 힘의 열세를 만회해보자는 것 아닌가. 여기에 또 '내로남불'을 들이대면 남는 것은 군비경쟁의 악순환밖에 없다.

과장하지 말자. 이번 성명은 "나라의 주권과 령토완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수호'에 방점이 찍혀 있다. 북한이 지배하는 영토를 수호하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과장하지 말자.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그의 유엔 연설에는 중요한 조건절이 있었다.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을 파괴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억제정책의 천명이다. 거기에는 선제공격도 예방전쟁도 없었다. 미국이 지난 60년 이상 유지해온 정책을 되풀이한 것뿐이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