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대통령' 시대의 모순

적어도 페미니즘에서 우리는 모두가 '당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대신 함부로 다른 이의 경험을 전유하거나 대변하려 하지 않으면서, 또한 다른 이의 경험을 내 경험과 생각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고 단정짓고 낙인찍지 않으면서요.

2017-11-30     나영

지난 주 금요일에 저는 이대 한국여성연구원에서 열린 국제 워크숍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퀴어 페미니즘으로 제기하는 쟁점들"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했습니다. 저의 발표는 문재인에서 시작해 보수 개신교계와 TERF의 '의도치 않은(?)' 조우에 대해 짚고, 페미니즘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제안을 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페미니스트 선언'이 세상의 불평등과 착취 구조에 관한 총체적인 인식론이 되지 못하고, 단지 젠더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인정받는 주체되기'에만 집착하게 될 때, 몇 개의 가시적인 성과는 드러낼 수 있겠지만 그것은 너무나 허약한 모래 위의 집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양성평등에 관심이 있느냐, 물론 아닙니다. 이들의 구호에서 양성평등은 성평등을 반대하기 위해 동원되었을 뿐. 이 행사를 보도한 기사의 댓글에는 "성평등이 되면 트랜스젠더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오고 어쩌고"하는 내용, "성전환 수술을 세금으로 대줘야 하나", "수술하고 호르몬 맞고 자궁이식한다고 남자가 여자 되나", "정신병은 치료의 대상이지 그대로 살라고 법으로 인정해줄 대상은 아니지 않나" 하는 등의 논리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보수 개신교계에서 조직된 댓글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상시민'의 경계 구분짓기가 본격적으로 강화될 것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이전의 다른 보수 정권에서보다 더욱, 합리성과 부드러운 가부장, 이성애 가족주의의 명분을 쓰고, '다른 안보'의 기치를 걸고, 국뽕과 팬심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이 펼쳐지겠죠.

적어도 페미니즘에서 우리는 모두가 '당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대신 함부로 다른 이의 경험을 전유하거나 대변하려 하지 않으면서, 또한 다른 이의 경험을 내 경험과 생각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고 단정짓고 낙인찍지 않으면서요.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