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보고서를 만들자!

여성 전임교원을 늘리자는 주장은 성비를 억지로 맞추자는 게 아닙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부자연스럽게 왜곡된 숫자를 자연스럽게 되돌리자는 이야기입니다. 운동장 바로 세우는 일을 더불어 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운동장 안에 가만히 있으면 그게 기울어져 있음을 알기 어렵습니다. 여성이나 타교 출신 교수 비율 등을 의식적으로 살필 필요가 그래서 있습니다.

2017-11-29     윤태웅

올해 9월에 발표된 '서울대 다양성 보고서 2016'을 살펴봤습니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여성 비율이 각각 40.5%와 43.2%로 나와 있더군요. 여성 전임교원 비율은 15.0%입니다. 그런데 비전임 전업 교원/연구원 중엔 57.6%가 여성이었습니다. 요컨대 여성 전임교원은 매우 부족하고, 여성 비전임 교원/연구원은 외려 남성보다 많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공과대학은 여성 학부생과 대학원생 비율이 15.5%와 16.5%, 여성 교원 비율이 3.2%에 불과하다 합니다.

박은정 교수가 화제입니다.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옛 톰슨 로이터)가 선정한 세계 상위 1% 연구자(HCR)에 2년 연속 이름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박 교수는 경력 단절 주부로서 마흔을 넘겨 박사학위를 받은 계약직 연구 교수였습니다. 박 교수 사연을 소개한 기사의 제목엔 박은정이란 이름 대신 '경단녀 박사'란 표현이 등장하고, 기사는 '흙수저 출신...'이란 말로 시작됩니다. 온갖 좋은 조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연구중심대학 교수도 하기 어려운 일을 그런 이력의 소유자가 성취해냈다는 건 감동적인 소식이었지요. 이 사실이 알려지자 카이스트와 경희대가 박은정 교수에게 정규직 교수 자리를 제안했고, 박 교수는 경희대를 선택했다 합니다.

여성 전임교원을 늘리자는 주장은 성비를 억지로 맞추자는 게 아닙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부자연스럽게 왜곡된 숫자를 자연스럽게 되돌리자는 이야기입니다. 운동장 바로 세우는 일을 더불어 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운동장 안에 가만히 있으면 그게 기울어져 있음을 알기 어렵습니다. 여성이나 타교 출신 교수 비율 등을 의식적으로 살필 필요가 그래서 있습니다. 국내 대학으론 처음 발표된 서울대 다양성 보고서가 반가운 까닭입니다. 보고서에 나온 숫자들은 좀 걱정스러워도 말입니다. 다른 대학들도 다양성 보고서를 만들기로 하면 좋겠습니다. 문제를 인식하는 게 먼저니까요.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