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상사,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같은 을끼리 갑질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도 고용된 처지에) 고용을 가지고 협박하거나, (자기가 해야 할) 개인적인 일을 해줄 것을 요구하거나, (그게 자신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걸 모르는지) 욕설과 비하 발언으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는 것 등 말이다.

2017-11-28     최지연

[그래봤자, 월급쟁이④]

여기 상사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한 세 사람이 있다.

상무로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미끼로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시키고, 그것마저도 새벽 6시가 아닌 6시 2분에 CCTV에 찍혔다고 생트집 잡는 '사이코' 상사를 둔 닉,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마약만 하고 다니던 망나니가 회장님 후계자로 나타나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말도 안 되는 업무를 지시하는 '낙하산' 상사를 둔 커트, 환자를 마취시켜두고 희롱하는 것도 모자라 약혼녀가 있다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와 하룻밤 보내자며 들이대는 '색광녀' 상사를 둔 데일이 바로 그들이다. 바로 영화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속 주인공들이다.

일 떠넘기기와 책임 회피는 물론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막말을 일삼고, 부당한 요구를 하고, 고용까지 위협하는 직장 내 꼴불견 상사들의 행태는 대한민국의 직장 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실 그대로이다.

이런 사이코 밑에서 일하는 닉도, 직장 내 성희롱을 버티며 일하는 데일도, 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낙하산 밑에서 일하는 커트도 버티는 이유는 회사 밖은 더 냉혹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등학생일 때 같은 학교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던 친구가 리먼 브라더스에 들어갔다 회사가 망하자 매춘업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걸 보며 회사를 때려치우는 대신 서로의 상사를 죽여주기로 약속한다. 그다음 영화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까지 상황상황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발생하고, 좌충우돌하는 장면들을 코믹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그들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내가 상사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상사였으니, 그가 사원이었던 시절 어떻게 일했고, 그의 상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말이다. 그래도 사원이나 대리 시절에는 똘망똘망했던 것은 아닐지, 그래도 그때는 배려심도 있고 인간적이지 않았을지, 적어도 그때는 인간적인 사람은 아니었을지, 막연한 희망 아닌 희망을 품어본다. 그래야 지금의 상황을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이다.

금방 자신의 역할에 빠져들었다. 교도관이나 수감자의 역할 연기를 위한 애초의 대본은 참가자 자신의 권력과 무력감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왔다. 부모의 상호작용에 대한 관찰(전통적으로 아빠는 교도관, 엄마는 수감자), 의사, 선생님, 상사 등의 권위에 대한 자신의 반응, 그리고 감옥의 삶을 그린 영화 따위에 의한 문화적 세뇌 등에 기인한다. 사회가 그들을 훈련시켰던 셈이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역할 연기를 하면서 보여주는 즉흥연기를 데이터로 기록하면 되었다.

_ '루시퍼 이펙트' 347쪽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지가 궁금했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세기의 실험이라 불리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하게 된다. 이 실험은 심리학 실험이라는 전제 아래 평범한 학생들의 자원을 받았고, 그 학생들을 감옥처럼 만들어 놓은 실험실에 몰아넣은 뒤 무작위로 수감자와 교도관으로 역할을 주어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연구자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역할 지침도, 규칙도 주지 않았다. 그저 그들을 교도관과 수감자로 나누어주고, 그들에게 어울리는 옷을 나누어줬을 뿐이었다.

이 실험은 필립 짐바르도의 저서 '루시퍼 이펙트'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영화 '엑스페리먼트'로도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사실 이 실험에 자원한 참가자들은 대부분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온 것이었다. 역할을 잘 해낸다고 어떤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실험의 목적도 몰랐기 때문에 실험 자체에 대한 어떤 목적의식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시간 동안 감옥에서 보내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스스로가 주어진 역할과 시스템 속에서 그에 맞게 행동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 안에서 서로 규칙을 만들고, 권위를 만들며 그것에 복종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권위에 대한 학습'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권위를 학습한다. 가정에서는 부모에 대한 절대복종, 학교에서는 선생님에 대한 복종, 회사에 가서는 상사에게 복종을 배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귄위를 가진 위치에 서면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각자가 권위의 모습을 그린다. 아무도 그 역할은 이러해야 하며, 이런 권위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지만 자식으로, 학생으로, 팀원으로 권위에 복종하며 저절로 학습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오르면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귄위를 휘두르게 된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든, 그른 방향이든 말이다.

_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93쪽

자리는 사람을 바꾼다. 일렬로 동료들과 쪼르르 앉았던 내 책상이 그들과 다른 방향으로 놓이는 순간, 내 책상의 크기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커지는 순간, 회사 내 나의 공간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넓어지고 독립된 나만의 공간이 생기는 순간 사람들은 나의 권위가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제 내가 보고를 위해 누군가의 자리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내게 보고를 하러 내 자리로 찾아온다.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해도 직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자리만으로도 권위는 다져진다.

정보 장악력은 권위를 더욱 공고하게 다져준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정확하게 회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면 회사 내 중요한 결정에 의사결정자로 참여하게 될 수도 있고, 열람할 수 있는 정보도 이전보다 훨씬 많아진다. 팀장은 부하 직원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알고 있지만, 상사는 그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알고 있는 정보들이 있다. 그래서 정보를 많이 쥔 상사는 권위의 대상이 되고, 상대적으로 적은 정보를 쥔 부하 직원은 그 사람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

"우리, 같은 을끼리는 갑질 하지 맙시다"

_ 드라마 '욱씨남정기' 중에서

하지만 그런 믿음이 곧 환상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내가 일을 열심히 하면 부하 직원들은 그 이상으로 일을 해야 하는 고통에 빠져들었을 것이고, 소신 있는 결정을 내려 조직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내 직원들이 승진에서,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해를 해주면 더 많은 것을 이해해달라 하고, 편안하게 대해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도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거기에 정작 그렇게 했지만, 사람들은 자기 같은 상사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배신감마저 느꼈을지 모른다. '미생' 오 과장 같은 상사를 드라마에서는 모두가 응원했지만, 실제 그런 상사 밑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어차피 '좋은 상사'는 없다. 내가 만났던 상사들 중에서도 '딱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라는 생각이 드는 상사는 없었고, 잠깐이나마 작은 조직 속에서 나 스스로가 상사의 역할을 했을 때도 난 좋은 상사는 아니었다. 내게 일을 '지시'하고 나를 '평가'하는 이상 상사는 결코 편하지도, 좋아지지도 않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상사들은 굳이 '좋은 상사'가 되려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더 사이코스럽고 더 또라이같은 상사들이 첩첩산중으로 쌓여 있을 테니 말이다.

'같은 을끼리 갑질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도 고용된 처지에) 고용을 가지고 협박하거나, (자기가 해야 할) 개인적인 일을 해줄 것을 요구하거나, (그게 자신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걸 모르는지) 욕설과 비하 발언으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는 것 등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나를 배신자 취급했던 팀장보다, 등 두들겨주며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았다고 한 팀장이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두고두고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것처럼, 적어도 상하관계가 끝이 났을 때는 인간 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