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거절을 거절하고 싶다

이문체육문화센터 헬스장에서 '정중히 쫓겨난' 임현수씨 사건. 장애인 차별은 발생했지만, 그 누구도 차별을 의도한 사람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상황을 낮추면서까지 교양있게 장애인을 대하고 염려한 죄밖에 없다는 무고한 이들만 존재할 뿐이었다.

2017-11-22     변재원

"그러다 다치시면 어떡하려구요." 집 밖을 나설 때마다 의도치 않게 매일 듣게 되는 걱정이다. 이 발화 속에는 지인의 선의가 깃들어져 있기도 하고, 담당자의 권태로움이 담겨있기도 하고, 주변인의 혐오가 담겨있기도 하다. 그들은 '다치시면'이라는 높임말의 가정을 통해 나의 인격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 본래 이 질문의 의도는 그렇게까지 상냥한 편이 아니다. 장애인인 '당신이' 다치시게 되면을 가정하는 염려의 말보다, 그러다 '내가' 다치면 어떡하냐는 우려가 크게 담겨져 있다. 그러니까 각박한 한국 사회의 너그러운 교양인으로 비추어지기 위한 호혜로서 장애인에 대한 존중을 힘껏 표현함으로써 진심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다시 정리해보자면, "(네가) 그러다 (내가) 다치면 어떡하라구요."가 적당히 어울릴 것이다. 장애인은 평온한 일상의 리듬을 깨뜨리고 잠재적인 위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사고유발자로 취급된다.

"운동 장비 없다"..장애인 내친 구청 헬스클럽) 문전박대를 당한 것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활동보조인과 함께 방문했음에도, 본인이 하고자 하는 운동이 위험의 부담이 없는 제한적인 근력 운동이라고 설명함에도, 담당 직원들로부터 헬스장이 2층에 위치해있다거나, 장애인분들이 샤워하기에 위험한 노후된 시설을 갖추고 있음을 강조하거나, 장애인을 도와줄 전문 자격인이 없다는 이유의 양해를 들으며 쫓겨났다.

이번 민원이 공론화되면서 장애인이 장애인복지관에 가지 않고, 동네 헬스클럽에 가는 것은 자신의 처지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결정이라는 비난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대답을 한 공무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후화된 시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여기서 운동하겠다는 장애인 민원인이 이기적으로 비추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장애인은 합리적이지 못한 사람 혹은 교양 없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나는 8살 때 정중히 거절당한 기억을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여전히 거절당할 것을 두려워하며 산다. 병원에 가도 대학병원이 아닌 이상 의사들이 나를 진료하는 것을 거절하고, 재활을 위해 스포츠 시설을 방문해도 나의 등록을 거절한다. 그들은 한결 같이 자신의 능력과 일터를 깎아내리면서까지 정중히 나를 거절했다. "그러다 다치시면 어떡하려구요."라는 말을 듣고 사는 것은 익숙한 일상이 되었고, 나는 그 이타적인 염려와 함께 사회로부터 번번히 분리되었다.

그러나 강자의 언어에 반론을 제기하는 약자들은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된다. 그러한 반론의 대부분 근거는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정되지 않는 말들로 취급된다. 약자의 언어를 껴안으며 발전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약자들은 다른 전략을 취한다. 더이상 강자에게 반박하기보다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그러다 다치시면 어떡하려구요."라는 강자의 언어를 뛰어넘기 위해 장애인 본인은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를 해야 한다. 맹세로도 부족하면, 자신의 신체와 인격을 증명해낼 것들이 필요하다. 의사의 소견서부터 시작하여, 이 동네에 몇 년간 살면서 이웃과 불화가 없었는지, 대외 활동 표창장 등을 한껏 보여주면서 비장애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강자의 언어는 품격 있고, 약자의 언어는 거칠다. 강자의 언어는 느긋하며 호흡이 길고, 약자의 언어는 급박하고 호흡이 짧다. 강자에게 인정받아야만 개별적으로 살아남을 자격을 부여받는 약자의 설득전략. 약자는 언제쯤 약자만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일까. 현실에 비추어 다시 표현하자면, 장애인은 언제쯤 상냥한 강자의 호혜에 대들 수 있을까. 장애인은 언제쯤 자신이 위험하지 않음에 대해 증명하는 것을 멈추고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친절한 거절의 언어 속에서 장애의 한계를 깨닫는 과정은 아직까지 지루하고 불쾌하다.

* 이 글은 비마이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