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게여야 하는 이유

남편은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자마자 눈이 동그래졌다. 커다란 고무 대야에 갓 담근 듯 아삭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었다. 우리는 국수가 나오기도 전에 접시의 절반을 비워버렸다. 식사를 하는 사이, 비워진 그릇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척척 채워졌다.

2017-11-13     손수현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오랜만에 일찍 끝났는데."

"와, 김치 봐. 국수의 팔 할은 김치인데. 일단 합격!"

"국수엔 갓 담근 김치가 잘 어울리잖아요. 그래서 우린 매일 아침마다 그날그날 필요한 양만큼만 담가. 입맛에 맞는다니 다행이네. 앞으로 자주자주 와요."

계산을 마친 우리에게 아주머니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갓 담근 김치니까 그렇게 맛있을 수밖에 없는 거였구나. 손님 하나하나를 살갑게 챙기는 것도 이 집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것 같았다. 제 아무리 맛이 훌륭하고 외관이 멋들어지다 하더라도, 그런 표정과 그런 마음씨가 없다면 얼마 안가 발길이 뚝 끊겨버리고 말 테니 말이다. 거리에 다섯여섯 개씩 되는 과일가게 중 가장 멀리 자리한 가게에 가는 이유도, 대로변에 자리한 미용실을 지나 굳이 2층에 위치한 곳에 가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번 더 반겨주고, 한 번 더 신경 써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을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져 덩달아 나도 즐거워지고 마는, 단골 가게에는 꼭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술집이 즐비한 거리, 딱 하나 있는 이 국수가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린 속을 달래고 갔을까. 그 순간, 자그마한 가게가 엄청나게 커 보였다.

* 이 글은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