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을 좋아하는 상속녀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는 어떻게 과학수사의 어머니가 되었나

2017-11-10     김도훈

일단 로빈은 고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가 만든 가상의 캐릭터, 인형이라는 걸 짚고 넘어가야 한다. 스미소니언에 의하면 리는 미국 최초의 여성 경찰청장이었으며, 동시대의 탁월한 범죄학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우리는 로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로빈은 리가 강력계 형사들에게 범죄 현장 평가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세밀한 디오라마의 소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878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리의 아버지는 성공한 농기계 사업가였다. 어렸을 때부터 살인 미스터리, 특히 셜록 홈즈의 모험이라면 사족을 못 썼지만, 리는 소설을 읽을 때 외에는 조용한 삶을 살았다. 리의 어머니는 일기에 딸이 “나는 인형과 신 말고 친구가 없어요.”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1931년, 가족의 재산을 물려받은 리는 두둑한 유산을 사용해 과학수사의 세계로 들어갔다. 먼저 하버드에 미국 최초의 법의학과를 만들었다. 3년 뒤에는 이 학과에 책과 원고를 기증했는데, 후에 이는 매그래스 법의학 도서관이 된다. 1936년에는 25만 달러를 더 기증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현재 가치로는 440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여성 최초로 뉴햄프셔 주 경찰 청장이 된 것은 리의 엄청난 지식과 특이한 기술 때문이었다(이 직함은 가끔 ‘명예직’으로 불리기도 했다). 뉴햄프셔 주에서 리는 경찰청 교육부장직도 맡아 세미나와 훈련 프로그램을 주도했다. 디오라마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다.

“이 모형들은 인형의 집이 아니다.” 볼티모어 수석검시관의 보좌관인 브루스 골드파브가 허프포스트 인터뷰에서 말했다. 골드파브는 1990년대에 언론인으로서 리의 작업들을 취재하며 처음 접했다. 그가 지금 1966년부터 디오라마들을 보관해둔 건물에서 경찰들에게 현장 관찰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는 건 우연의 일치다. 1966년 이전에는 하바드에서 보관했다.

그렇다면 범죄 현장에 처음 들어가는 경찰들을 제대로 훈련시키자는 게 리의 아이디어였다. 얼룩, 구겨진 시트, 떨어진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증거가 될 수 있는 물건으로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실제 범죄 현장에 사람들을 다 데리고 갈 수는 없다. 차선책은 작은 범죄 현장을 만드는 것이다.” 페이스북 라이브에서 디오라마들을 보여주며 그는 이들을 “1940년대의 가상 현실”이라 불렀다.

로빈의 디오라마를 예로 들어보면, 리는 시각적 단서를 여럿 남겨놓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부엌으로 들어가는 두 문의 틈은 신문으로 막혀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시체만 빼면 전반적으로 깔끔한 주방 안에 좀 헝클어진 것들이 있다. 창가의 식탁보가 한쪽으로 처져있다. 누가 탈출하다가 건드렸을까? 도마가 떨어질락말락 하고 있다. 혹시 도마가 살인무기인가?

각 모형에는 ‘해답지’가 있다. 리가 짠 섬뜩한 시나리오의 단서들을 자세히 설명한 종이다. 해답지가 든 검시관 사무실 서랍은 열쇠로 잠겨있다. 골드파브도, 심지어 수석 검시관도 해답지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어차피 이 해답은 어떻게 벌어진 사건인지 고전 추리소설처럼 명쾌하게 결론내려주지는 않는다. 디오라마 미스터리의 목적은 해결이 아니다.

스미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의 렌윅 갤러리에서 ‘살인은 그녀의 취미: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와 원인불명사의 모형연구’라는 제목으로 전시 중이다. 리는 자신이 아티스트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범죄학에 엄청난 기여를 했던 리로선 아직도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정작 모형이라는 사실을 신기해 할 것 같다고 골드파브는 추측한다. 하지만 한 번 보기만 하면 사람들이 리의 작업에 홀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시체는 도기 인형 머리와 신체 부위를 사용하고 세심하게 조작해 진짜 피해자와 닮게 만들었다. (스미소니언 관리 위원 에이리얼 오코너는 애틀랜틱에 “사후경직 인형을 팔지는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시체의 위치는 디오라마의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죽었는지, 살해 후 옮겨졌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목을 맨 시체 인형의 경우 납을 주입해 실제 시체의 처진 모습을 닮게 만들기까지 했다.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소파와 옷에 쓰인 천의 상당수는 리가 직접 손바느질 한 것이다. 리는 자신이 재현하는 시대의 진짜 빈티지 물건들을 사용했다. 소품으로 사용할 천으로 옷을 만들어 직접 입기도 했다. 사람이 입던 옷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피는 빨간 매니큐어로 표현했다. 범죄 현장에서 정보가 되는 피가 튄 모습, 고인 모습도 정확하게 재현했다.

스미소니언 전시 관람자들에겐 돋보기와 손전등을 지급해 끔찍한 디테일을 낱낱이 살피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해줄 것이다.

그녀는 진정한 범죄학자이자 경찰청장이었지만(골드파브는 그녀의 직함이 ‘명예직’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매체에서는 리를 살인에 관심이 많은 괴짜 할머니로 묘사하곤 했다. 뉴욕 타임스에 실린 리의 부고에서는 “범죄의 권위자가 된 증조할머니”, “현실의 미스터리에 엄청난 관심을 가진 부유한 과부”라는 표현을 썼다.

리의 이야기에 그녀와 남성과의 관계가 따라붙는 것 역시 골드파브는 문제삼는다. 남자 형제 때문에 범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느니, 매사추세츠 주 서포크 카운티의 검시관이던 친구 조지 버제스 매그래스 때문이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은 이거다: 이 여성이 무언가에 관심이 생겨서 실제로 그 일을 했다. 그런데 늘 더 큰 설명이 따라붙는다. 이야기 속에 꼭 남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게 나는 화난다.”

리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그런 일들을 했는지에 대해 단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싶은 유혹은 존재한다. 괴상한 상속녀, 섬뜩한 할머니, 몰래 작업하는 아티스트, 교활한 페미니스트. 하지만 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넓게 퍼져있다. 리의 디오라마는 형사들에게 관찰 기술을 알려주기도 했고, 넘겨짚으면 위험하다는 경고를 우리에게 보내기도 한다. 한 모형에서는 나이 든 여성이 목을 맨 채 죽어있고, 옆에는 웨딩 드레스를 입은 장난감과 편지 뭉치가 놓여있다. 노처녀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내렸다고 추리하고 싶어지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다른 단서들을 보면 그건 사실이 아니다. 리의 모형은 형사들이 자기 자신의 편견을 이해하고, 자신의 성향이 전체 그림을 보는 시각을 방해할 수 있다는 걸 깨닫도록 훈련시켜준다.

이 교훈은 리의 인생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허핑턴포스트US의 How A Doll-Loving Heiress Became The Mother Of Forensic Scienc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