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넛지'를 위하여

넛지 정책의 실행은 정부가 하더라도 넛지 입안과 투명성 보장·감시 등은 언론이 먼저 나서자는 것이다. 넛지를 둘러싼 이념 갈등은 물론 정부가 넛지 입안의 주체가 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실질적인 위험을 피해가자는 뜻과 더불어 넛지를 디지털 시대에 쇠퇴해가는 언론의 갱생을 위한 탈출구로 삼음으로써 민주주의의 활성화를 기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2017-10-23     강준만
ⓒScott Olson via Getty Images

언론이 넛지의 주체가 되는 '한국형 모델'을 제안하고 싶다. 넛지 정책의 실행은 정부가 하더라도 넛지 입안과 투명성 보장·감시 등은 언론이 먼저 나서자는 것이다. 넛지를 디지털 시대에 쇠퇴해가는 언론의 갱생을 위한 탈출구로 삼음으로써 민주주의의 활성화를 기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스웨덴 환경보호국이 2014년에 발표한 '넛지 보고서'를 읽으면서 적잖이 놀랐다. 85쪽에 이르는 장문의 보고서 내용이 매우 알찼기 때문이다. 넛지가 탄생지인 미국보다는 오히려 유럽, 특히 북유럽 지역에서 인기가 높은 것은 넛지의 이념 지향성이라고 할 수 있는 중도 노선에 대한 거부감이 적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일러와 더불어 '넛지'를 쓴 캐스 선스타인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임기 4년 동안 백악관에서 연방정부의 모든 규제를 감독하는 정보규제국의 수장으로 일했는데, 그의 임기 동안 넛지를 둘러싼 이념적 논란이 뜨거웠다. 선스타인이 규제를 혐오하는 보수파의 거센 공격 대상이 된 것도 그런 논란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우익 논객 글렌 벡은 "선스타인은 가장 사악한 인간,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는데, 선스타인은 이런 공개적인 비난뿐만 아니라 공개되지 않은 집주소로 살해 협박을 담은 것을 포함해 많은 증오 편지를 받았다.

한국은 '넛지'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나라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사실 정책에서의 활용은 미미한 편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넛지 행정을 열심히 펴고 있기는 하지만, 주로 교통안전, 범죄 예방, 질서 유지에만 치중돼 있다. 넛지를 둘러싼 이념 공방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은 정부가 넛지 정책의 주체로 나선 반면, 한국에선 그렇게까지 전면적인 정책으로 시행되진 않았기 때문에 이념적·정치적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정부가 아닌 언론이 넛지의 주체가 되는 '한국형 모델'을 제안하고 싶다. 넛지 정책의 실행은 정부가 하더라도 넛지 입안과 투명성 보장·감시 등은 언론이 먼저 나서자는 것이다. 넛지를 둘러싼 이념 갈등은 물론 정부가 넛지 입안의 주체가 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실질적인 위험을 피해가자는 뜻과 더불어 넛지를 디지털 시대에 쇠퇴해가는 언론의 갱생을 위한 탈출구로 삼음으로써 민주주의의 활성화를 기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