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길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인간'들

가장 공통적인 첫 체험은 '멍때리기'이더군요. 사실 이것이야말로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방법이 아닌가요. 그리고는 밀폐된 독방 안에서 감옥 밖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하게 되는 이 역설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쁜 일상에서 '시간 빈곤'에 시달리다가 문득 시간의 풍요로움을 깨닫습니다. 한 젊은 참여자는 "내가 흘려보내고 있던 순간순간이 이렇게 길게 쓰일 수 있는 시간이었는지를 새삼 느꼈다. 정말 소중하게, 의미있게 쓸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는데, 흘러간 시간들이 아까웠고, 앞으로의 시간들이 귀해졌다"고 털어놓습니다.

2017-10-19     행복공장
ⓒ뉴스1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행복공장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릴레이성찰 프로젝트 시즌1 마무리] 순례의 길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인간'들

이렇게 인사드리면서도 저는 좀 민망합니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 운영위원의 한 사람이지만 사실 저는 아직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감옥을 참 싫어합니다. 1970년대 초 갓 20대에 들어선 나이에 학생운동에 참여해 감옥생활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복공장의 제안을 줄곧 피하다가 오늘 인사말 하러 오게 되자 하는 수없이 오전에 한 시간 속성 체험을 했습니다. 정좌를 하고 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맞은편 산이 '움직이는' 모습을 목도했습니다. 놀라서 좀더 자세히 바라보니 나무들이 바람결에 흔들릴 때마다 산이 살아 움직이는 듯 보인 것입니다. 그 체험은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무더운 여름 서울교도소 독방 창을 통해 떡갈나무의 잎들이 미풍에 흔들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던 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래 전의 감옥 체험과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오늘은 나의 것'입니다.

행복공장의 프로그램이 순례인 또다른 이유는, 일상의 삶이랄까 현재와 잠시나마 결별한 길에서 경험하고 들은 이야기의 기록, 성찰의 기억, '집으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들이 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변화된 자기 모습의 증거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기도 합니다.

허프포스트코리아와 행복공장 홈페이지에 실린) 기록을 흥미롭게 훑어보는 기회를 누렸습니다.

어떤 분들은 삶의 변곡점에 대해 성찰하기도 합니다. 가장 행복했던 때, 가장 불행했던 때를 깊이 돌아봅니다. 그중 제가 특히 가슴 뭉클하게 느낀 것은, '80세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그분의 체험에 비하면, 대부분의 분들은 '집으로 돌아온 이후' 각자의 생활에 있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혹 느끼게 되지 않을는지요. 그런데 그렇게 말한 분도 "무언가 지속적으로 꿈틀대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분명히 내 속에는 무엇인가가 생겨났다"고 증언합니다. 그것은 "빛 한 줄기의 틈" 같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사실, '24시간의 감옥' 프로그램이든, 요즈음 유행하는 명상이나 요가나 마음 훈련 등을 통해 새로운 자아의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시적으로 맛본 수행력은 완성될 수 없는 능력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연결과 지원이 요청됩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개인적 수행이 자칫하면 사회적 폐해로부터 무관심하거나 거리를 두는 삶의 태도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요. '순례의 길'에서 형성된 새로운 자아가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공공적 심성 또는 사회적 영성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당일 현장에서는 유쾌하고 활기찬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까 망설여져 준비했음에도 읽어드리지 못한 윤동주 시인의 시 한편 소개합니다. 올해 마침 그의 탄생 100주년이기도 한데, 저는 그를 '아름다운 사람'으로 여기기에 여러분에게 출소 선물로 알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길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나의 길 새로운 길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오늘도...... 내일도......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글 | 백영서 (연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