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일개 부처가 벌인 일

'공정인사 지침'은 근로기준법에 없는 기업의 자의적 해고를 감히 '지침'으로 허용하겠다는 위법한 내용을 담았다. '취업규칙 지침'은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한 노조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한 근로기준법을 무력화시킨 채 기업이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나아가 두 지침은 '근로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하도록 해놓은 헌법까지 위배했다.

2017-10-12     서복경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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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지침'을 폐기했다. 2016년 1월 박근혜 정부 고용노동부가 도입한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이하 취업규칙 지침)을 가리킨다. 이 두 지침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을 위한 핵심수단이었고, 노사정위원회 한국노총 탈퇴, 노동계 총파업 등 격렬한 사회갈등을 야기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는 두 지침의 폐기를 공약했고 이를 실천한 것이다. 일단 다행한 일이다.

감히 일개 행정부처가 '지침 따위'로 헌법과 법률을 무력화시킨 문제에 관한 것이다. '지침 따위'라는 표현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관공서의 '지침'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평범한 시민들은 헌법이나 법률 조항의 위력보다 일선 관공서의 규칙과 규제에 더 영향을 받으며 산다. 그럼에도 헌법과 법률이 중요한 이유는, 행정기관과 공무원들이 민주주의 원리를 넘어서서 시민의 권리를 제약하거나 월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주는 최후의 안전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총리, 장관들이 만들어내는 규칙이 헌법과 법률을 마음대로 넘어서는 것이 용인되는 순간, 우리의 정치체제는 더 이상 민주주의라고 부르기 어렵게 된다.

'이것은 그저 절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해하려면 히틀러를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히틀러(독재체제)는 의회와 갈등하지 않고도 정책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얻으면서 출발했다.'

사설에 나온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권력의 남용은 그들 개개인이 나빠서가 아니라 견제받지 않을 때 시작된다. 국회가, 언론이, 시민이 행정 권력을 견제할 수 있을 때 건강한 행정부도 가능해진다. 물론 사법 권력, 의회 권력도 마찬가지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