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을 기억하세요!

며칠이 지난 지금도 아찔하게 기억되는 사건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난 또 그 날의 끔찍함과 감사함을 언제 그랬냐는듯 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날의 평범한 일상이 그랬듯 우리가 그저그런 하루를 누리는 것은 기억에서 지워진 언젠가의 감사한 사건들이 쌓여졌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2017-10-10     안승준
ⓒvchal via Getty Images

그 날의 아침도 세면을 하고 식사를 하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지만 오장육부의 여기저기서는 아직 깨어나지 않음을 알리는 미묘한 답답함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 지하철역으로 가는 걸음의 동작이 반복되면서 아직 젊은 내 몸은 신진대사가 급격히 정상동작으로 회복되고 있음을 다소간의 신호들로 알리기 시작했고 그날도 그렇게 상쾌함을 찾아가고 있었다.

어젯밤의 매운 야식과 약간의 음주는 뱃속 장들의 기상과 함께 급속한 독소의 배출을 뇌에게 간언하고 있었다.

몇 정거장 되지 않는 출근의 여정 속에서 몇 번이나 식은 땀을 닦아내는 내 모습이 안스러워 보였는지 이 곳 저곳에서 앉으라는 양보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지만 그 조차도 내겐 또하나의 고역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나를 최소한의 사회적 인간으로 지켜낼 확신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온갖 불길한 예측들이 환상으로 옮겨가고 나는 해피앤딩보다는 그렇지 않았을 때의 대처에 대해 수만가지의 대책을 연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차분히 내려놓으려던 마지막의 순간! 하늘은 기적과도 같이 내게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기 시작하셨다.

난 그 순간만큼은 동료애와 종교의 위대함에 대해 진하게 온 몸으로 느껴가고 있었다.

30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난 내 모든 신심을 다해 기도했고 내 모든 에너지를 짜내어 생각하고 행했다. 구세주처럼 나타난 선배교사는 열일을 재쳐두고 나를 도왔고 난 결국 간절히 원하던 것을 이뤄내고 그것은 그 날의 내가 또 한 번 강단에 당당하게 서는 밑거름이 되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아찔하게 기억되는 사건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난 또 그 날의 끔찍함과 감사함을 언제 그랬냐는듯 잊을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끊임없이 넘어야 하는 고비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우리가 넘어선 수 많은 위기의 순간들이 발판이 되어 지금의 모양이 존재하지만 화장실에서 나온 내가 그랬듯 편안해지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평범한 일상이라고 말하곤 한다.

명절이 다가오고 긴연휴를 지내는 시간 속에서 너무도 많아져버린 휴대폰의 연락처에 잃어버린 감사함이 없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평범함은 간절함의 결과이고 성취는 반복적인 감사함이 뒷받침 된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