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헤프너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했을까?

2017-09-28     강병진

‘플레이보이’의 창립자인 휴 헤프너가 91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한 명의 잡지 에디터에서 세계적인 미디어 제국의 왕으로 거듭났던 그의 생애를 짤막하게 정리했다.

그는 에스콰이어의 카피 에디터로 일하며 1952년에 자신의 잡지를 만들 것을 꿈꿨다. 1953년에 자금 투자를 받고 플레이보이를 창간했다. 그해 12월에 나온 창간호의 표지에는 마릴린 몬로가 등장했다.

헤프너는 배우 제인 맨스필드의 누드 사진을 냈다가 1963년에 외설죄로 체포되었다. 배심원단이 평결을 내릴 수 없어 기소는 취소되었지만, 헤프너는 이로 인해 플레이보이 재단을 만들어, 인간의 섹슈얼리티를 연구하는 단체들에 자금을 지원하고 검열과 맞서 싸웠다.

1972년 1월에 최초로 마릴린 콜의 전면 전신 누드 센터폴드를 발표했다.

1985년에 59번째 생일을 몇 주 앞두고 가벼운 뇌졸중을 겪었다. 그때 헤프너는 큰 깨달음을 얻고 방탕한 라이프스타일을 많이 바꾸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보도했다.

그는 1982년부터 플레이보이 회장을 맡아온 딸 크리스티에게 기업을 넘겼다. 크리스티는 1988년부터 이사회장 겸 CEO로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년 뒤 헤프너는 2억 7백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고 주식을 사들여 사기업으로 전환했다. 헤프너는 이 계약으로 매년 1백만 달러를 받고, 잡지 편집권을 전적으로 장악하고,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계속 살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고 포브스는 보도했다. 2011년 9월에 헤프너는 자신이 플레이보이의 37% 정도를 소유하고 있으나 라이센싱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관여하고 있다고 헐리우드 리포터에 말했다. 자신의 개인 재산이 1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건 상상하기 힘들다. 승계 계획도 없다.” 플랜더스의 말이었다.

당시 21세이던 아들 쿠퍼가 플레이보이를 대표하는 얼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쿠퍼 헤프너는 플레이보이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가 되었다.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그와 함께 살았던 젊은 금발 플레이보이 모델들 때문이었다.

1989년에는 36세 연하의 올해의 플레이메이트 킴벌리 콘래드와 재혼했다. 마스턴과 쿠퍼 두 아들을 낳은뒤 1998년에 별거, 2010년에 이혼했다.

한 번에 무려 7명의 여성과 사귄 적도 있었다. 그가 플레이메이트 홀리 매디슨, 브리짓 마쿼트, 켄드라 윌킨슨을 동시에 사귀었던 것은 리얼리티 시리즈 ‘더 걸스 넥스트 도어(The Girls Next Door)’에 나오기도 했다.

2008년에 세 여성 모두 헤프너와 헤어지고 플레이보이 맨션을 떠나기로 하자, 헤프너는 60세 연하의 크리스탈 해리스, 20세 쌍둥이 크리스티나와 카리사 섀넌과 사귀게 된다. 헤프너는 쌍둥이와 헤어지고 2010년에 해리스에게 청혼한다.

해리스는 결혼식을 5일 남겨두고 취소한다. 두 사람은 개의 양육권을 두고 요란하게 싸운 다음, 헤프너의 비서로 오랫동안 일했던 메리 오코너(2013년에 사망)의 도움으로 화해했다. 헤프너는 2012년 12월 31일에 해리스와 세 번째로 결혼했다.

플레이보이는 누드를 싣지 않기로 하고 2016년 1,2월 호에 마지막 누드 커버 모델로 파멜라 앤더슨을 선택하여 화제가 되었다. 올해 초 ‘정체성을 되찾겠다’며 다시 누드를 싣기로 했다.

2004년에 래리 킹이 낸 책 ‘내가 없어졌을 때 기억해줘(Remember Me When I’m Gone)’의 인터뷰에서 헤프너는 자신이 플레이보이 등에 남긴 유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혔다.

“나는 섹스에 대한 해롭고 위선적인 생각을 바꾼데 일조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주 재미있었다.”

 

허프포스트US의 'Hugh Hefner, Founder Of Playboy, Dead At 91'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