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30년 상환부터는 공동명의로

이제 서울 사는 게이나 레즈비언들은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절대 청약 당첨이 될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이전엔 일정 비율에 대해서는 가점 상관없이 무조건 추첨이었기에 그거 하나 바라고 청약을 넣었던 건데, 8월부턴 무조건 가점제가 되었다. 법적인 결혼을 할 수 없는 우리 동성애자들 같은 경우에는 결혼을 한 이성애자 부부들과의 가점 경쟁에서 상대가 될 수가 없다.

2017-09-28     김게이

30대 중반이 되고 보니 시간의 흐름에 거스를 수 없는 게 몇 가지 있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푹푹 찍어 발라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의 낯빛으로 돌아가진 않는구나. 아무리 실리마린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도 뚝뚝 떨어지는 체력은 어쩔 수가 없구나. 내 인생의 슈퍼스타 머라이어 캐리의 라이브 가창력은 더 나빠질 수 없을 수 같아도 매년 더 나빠지는구나. 그리고 아무리 기대하고 기다려봐도 서울의 전셋값은 검색 할 때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구나.

어차피 전셋값이 이렇게 오른다면 좀 더 빚을 내서 그냥 살 집을 사자, 라는 의견에 우리 부부가 동의한 게 올 봄쯤이었다. 내년 초에는 또 다른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든 살던 집에 재계약을 하든 해야 할 텐데, 이삿짐 쌌다 푸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고 또 얼마가 오를지 모르는 지금 집에서 눌러 앉아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래, 기다려봤자 서울 집값은 영원히 오를 것 같은데 언젠간 살 집 이번에 사자, 무리하지 않고 집 사는 사람은 서울에 없어, 라고 결론을 냈다.

그때부터 몇 달 간은 아파트 청약 공고 살펴보는 게 우리의 일이었다. 그 누구도 이거 너네 집이야 라고 한 적 없지만, 청약 당첨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마치 이제 그 동네가 우리 동네가 된 것처럼 거기서 회사까지의 출근 길을 내 멋대로 상상하곤 했다. 아, 지하철 한 번 갈아타야 돼서 불편해지긴 하지만 동네도 괜찮고 가격도 적절하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물론 결과는 항상 30대 1로 탈락, 어떨 땐 60대 1로 탈락이었지만.

8월 새 부동산 정책이 발표된 후 기사들을 찾아 읽기 전만 해도 투기 목적인 사람들 제재하는 게 목표일 텐데, 우리 같은 실수요자들에게 뭐 별다른 영향이 있겠어, 라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우리처럼 꾸준히 청약을 넣고 있던 주변 게이 친구들이 이제 청약은 물 건너갔다며 기사 링크를 보내줬다. 한 줄 한 줄 읽어보니 아, 이제 서울 사는 게이나 레즈비언들은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절대 청약 당첨이 될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이전엔 일정 비율에 대해서는 가점 상관없이 무조건 추첨이었기에 그거 하나 바라고 청약을 넣었던 건데, 8월부턴 무조건 가점제가 되었다. 법적인 결혼을 할 수 없는 우리 동성애자들 같은 경우에는 결혼을 한 이성애자 부부들과의 가점 경쟁에서 상대가 될 수가 없다.

아파트 청약은 포기하지만 그래도 덜 오래된 아파트로 가자.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게 될지 모르니 지금 전셋집보다는 넓은 집으로 가자. 출퇴근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는 집으로 가자. 분리수거 요일이 따로 없어서 제발 재활용 쓰레기 아무 날에나 버려도 되는 집으로 가자. 기타 등등 수많은 희망 사항들이 있었으나 결국 제일 먼저는 돈이었다. 우리가 빚을 내도 갚아가며 살 수 있는 집을 사자.

대부분의 평범한 30대 부부들이 그러듯, 우리 집도 어차피 진짜 주인은 은행님이 되는 거니까 어떻게 하면 제일 싼 이율로 빚을 낼 수 있을까에 대해 한참을 알아봤었다. 결론은 주택금융공사가 제공하는 보금자리론을 이용하는 거였는데, 정식 계약일이 다 되어서야 아차 싶었다. 보금자리론으로 사는 집은 법적 부부가 아니면 공동명의로 살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양가의 축복과 인정으로 꾸린 가정이기에 저런 상황이 발생하지야 않을 거다. 하지만 만약 한 명이 사고로라도 세상을 떠난다면 남은 재산 처리에 대한 여러 법적인 절차들이 일반 부부들보다 훨씬 복잡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일들을 간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집을 살 때 공동명의로 할 생각이었다.

아직 이사를 가려면 몇 개월이 남았다.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지, 예산은 어떻게 짤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걱정보다는 기대감으로 기분이 좋다. 같이 산 게 곧 만 7년이 되는데, 8년차가 되어서야 우리 집이 생기는구나. 아 물론 우리 집이라기 보단 은행 집이긴 하지만. 30년 상환으로 빌리는 돈이니까 이제 무조건 형이랑 30년은 더 살아야겠다. 30년 지나면 또 30년 상환으로 집 한 번 더 사야지. 계속 사야지.

* www.snulife.com 에 게시된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