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억의 45년 된 고물헬기'의 진실

'박근혜 정부에서 45년 된 미군의 중고 헬기를 구입하면서 1,500억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뭔가 엄청난 방산비리가 나타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과연 그럴까. 팩트체크를 해 보자. 일단 '45년 된 중고헬기'라는 표현 자체가 오류다. 주한미군이 넘겨준 기체들은 현재 밝혀진 바에 따르면 1984~88년에 제작된 기체들이다. 우리 육군이 미국에서 직도입한 CH-47D들이 대부분 1988~1990년 사이에 들어온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기체들이다. 즉 구매할 당시는 둘째 치고 아직도 기령 30년이 안 된 기체들이다. 어디서 나왔을까? 45년이라는 숫자가.

2017-09-20     홍희범

'박근혜 정부에서 45년 된 미군의 중고 헬기를 구입하면서 1,500억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뭔가 엄청난 방산비리가 나타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과연 그럴까.

미군으로부터 도입된 중고 시누크. 우리 군에서는 현재 CH-47NE형이라는 이름으로 운용 중이다. 2015년 서울 에어쇼 회장에서 촬영: 월간 플래툰 제공

일단 '45년 된 중고헬기'라는 표현 자체가 오류다. 주한미군이 넘겨준 기체들은 현재 밝혀진 바에 따르면 1984~88년에 제작된 기체들이다. 우리 육군이 미국에서 직도입한 CH-47D들이 대부분 1988~1990년 사이에 들어온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기체들이다. 즉 구매할 당시는 둘째 치고 아직도 기령 30년이 안 된 기체들이다. 어디서 나왔을까? 45년이라는 숫자가.

제자리 비행 시 자동기능이 없어 수동조종을 해야 한다는 점도, 계기판도 아날로그인 점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애당초 이것 역시 우리 군 보유 시누크들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어차피 구형 운용하던 우리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이고, 애당초 그런 기능들이 필요했으면 돈 더 주고 업그레이드를 했어야 한다.

주한미군의 CH-47F. 미군은 기존의 D형을 F형으로 교체하면서 안 쓰게 된 14대의 D형을 우리 군에게 넘겼다: 월간 플래툰 제공

국군의 중고 시누크, 즉 CH-47NE와 미군 CH-47F의 비교. 채프/플레어 사출기등 생존관련 설비가 중고 기체에는 없는 상태이다: 월간 플래툰 제공

애당초 1,500억이라는 금액 때문에 엄청난 바가지를 쓴 것처럼 보이지만, 예비부속 등의 제반비용을 빼고 나면 순수한 기체 가격은 대략 58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원래 CH-47D형의 가격이 생산이 종료된 2002년 기준으로 대략 신품 120억원 정도였다. 이 정도면 상태 좋은 중고를 제법 좋은 조건에 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이 상당히 정비를 잘 해서 넘겨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우리 군이 보유중인 대부분의 시누크에 장착된 T55-L-712엔진. 제작사 사진

과연 못쓸 고물인가

일단 들리는 이야기로는 중고 기체들의 개량이 거부된 것은 맞지만 노후화가 원인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기체 상태들이 나쁘지 않고, 특히 엔진이 국내 보유 시누크들 중 가장 신형이기 때문에 '개량 필요가 낮아'서 였다는 것이다.

실은 바로 앞서 언급한 712형 엔진의 부품 이야기다. 즉 보잉이 공급을 중단한다는 건 미군 중고가 아니라 거꾸로 우리 군의 기존 기체들의 엔진이다. 이대로 가면 2018년 9월 이후에는 '노후화된' 미군 중고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군이 가지고 있던 기존 기체들이 먼저 주저앉을 판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처럼 중고가 더 오래 쓰게 생긴 상황은 결국 우리 군의 자업자득이다.

애당초 시누크 성능개량 사업이 시행되는 가장 큰 원인도 결국 712엔진을 바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고, 미군 중고 기체들이 성능개량 대상에서 제외된 가장 큰 이유도 이것 때문으로 추정된다. 한마디로 이미 엔진이 개량된 상태이기 때문이 '굳이 할 필요가 없어서'일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노후화로 인해 비용이 낭비된다는 결론'이 과연 사실일지의 검증이 필요하다.

미군에서 도입한 중고 기체가 45년 전 기체도 아니고, 사실상 국군 기존 기체 대부분과 비슷한 나이인 데다 엔진은 오히려 국군의 기존 기체들보다 낫다. 심지어 보잉의 엔진 부품 공급이 끊기면 그 피해는 기존 국군 기체들이 가장 먼저 받기 때문에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오히려 엔진 부품 공급이 더 오래 갈 미군 중고기체들을 사 놓은 것이 외려 더 잘한 일이 된다. 심지어 사실이기는 한 항법장치나 미사일 경보장치 문제도 전후사정이나 우리 군의 운용 사정을 감안해서 문제인지 아닌지 따져야지, 막무가내로 큰 문제가 생긴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만만찮은 왜곡이다.

방산비리 등의 문제를 파헤치는 것은 좋다. 하지만 팩트만 걸고 넘어지자. 이번처럼 오류 가득한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흔히 말하는 '적폐세력'에게 좋은 일이다. 이런 식의 헛발질이 계속되면 결국 제대로 된 문제의 해결만 방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