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짜리 아파트 50만원에 살다... ‘현대판 고시원' 셰어하우스 6주 체류기

2017-09-19     김태우

소설가 박민규가 월간 <현대문학>에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게재한 것은 2004년 6월이었다. 박민규가 추억하는 시대는 1991년이다. 그는 소설에서 “1991년은 일용적 노무자들이나 유흥업소 종업원들이 갓 고시원을 숙소로 쓰기 시작한 무렵이자, 그런 고시원에서 아직도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이 남아 있던 마지막 시기였다”고 말했다. 1cm 베니어합판을 사이에 두고 칸칸마다 빼곡히 남자나 여자가 들어찬 이 공간을 박민규는 ‘세포막’ 같다고 평했다.

고시원을 벗어난 청년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들이 모여든 곳은 래미안, 푸르지오, 자이 등 세련된 아파트 이름이 붙은 도심 셰어하우스였다. 그 공간에서 6주를 보낸 <한겨레21> 교육연수생의 체험담을 싣는다. 청년 주거를 둘러싼 여러 고민도 함께 담았다. _편집자

평일 오후 ‘셰어하우스’의 현관 모습. 외출한 이들이 귀가한 저녁이면 현관은 신발로 더욱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다.

교육연수생에 지원했고 서류·면접을 거쳐 합격 통보를 받았다. 마지막 질문은 “어디서 지낼 건가요”였고 난 생각 없이 “친구 집”이라고 답했다. 그걸 왜 물었을까. 사실 친척도 친구도 없었다. 나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단기계약이 가능한 집을 찾았다. 보증금은 50만원을 넘으면 안 됐다. 회사와 가깝고(서울 도심이어야 했다), 여성 전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셰어하우스’였다(제1002호 특집 ‘친구 이상, 가족 미만과 집을 공유하다’ 참조). 공동생활이라면 자신 있었다.

7월23일: 입주

가장 먼저 긴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따라 들어가니 널찍한 부엌과 거실이 펼쳐졌다. 거실 옆에 자리한 안방은 4인실이다. 2층 침대 2개와 욕실이 있다. 현관 바로 앞 작은 방 2개는 2인실이다. 2인실에는 침대 2개가 있다. 현관 오른쪽 끝에 위치한 방은 3인실로, 싱글 침대와 2층 침대가 하나씩 있다. 2인실이 4인실보다 비싸고 2층 침대의 1층이 2층보다 비싸다. 조금 욕심내서 2인실을 골랐다. 문틈으로 엿본 4인실엔 옷과 수건이 옷걸이에 걸려 2층 침대 나무 기둥 사이마다 매달려 있고, 발 디딜 틈 없는 바닥과 옷 무더기가 놓인 침대가 보였다. ‘2인실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늦었지만 룸메이트가 들어오지 않았다. 룸메이트의 책상에는 경제학 책 두 권이 놓여 있었다.

7월25일: 룸메이트는 보험관리사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민주씨는 보험관리사다. 책상에 놓인 전공책 때문에 대학생인 줄 알았다고 하자 민주씨가 말했다. “CM이에요, 언니. 자산관리사라고 불러요. 아직 졸업을 안 해서 토요일에는 학교 가야 해요.” 올해 초 취직한 민주씨는 “빨리 정규직이 되고 싶다”고 했다. 교육 업무를 하는 CM으로 보험사에 취직했지만 인턴 기간에는 보험상품을 팔아야 한다. 이 집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뭐하는지 물었다. 모르는 듯했다.

“8명이나 살던데.”

7월26일: 모든 대화는 카톡방에서

사실 대화가 없는 건 아니다. 대화는 거실이 아닌 카톡방에서 이뤄졌다. 카톡방에서 오가는 대화는 ‘빨래 다 돌아갔으니 빼주세요’ ‘거실에 물건 치워주세요’ 등 누군가를 향한 지적부터 ‘A팀 분리수거 완료했습니다^^’ 등 공동생활에 필요한 공지까지 내용을 불문한다. 마치 대학에서 조별 과제를 하기 싫은 조원들이 카톡을 늦게 확인하듯 대답은 주로 하는 사람만 했다. 관리인은 일주일에 한두 번 부정기적으로 카톡방을 통해 방문예정일을 공지한다. 공지한 날짜와 시간에는 입주 희망자들이 관리인과 함께 집을 둘러보기 위해 방문한다. 그들이 나가면 집은 다시 고요해진다.

대학원은 이제 1학기를 마쳤다. 현지씨는 지난해 4월 처음 입주한 3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 집에서 벌써 1년 넘게 머물고 있다. 카톡방에 공지와 규칙을 올리는 것도, 신입을 초대하는 것도 현지씨였다.

8월2일: 욕실을 둘러싼 눈치게임

샤워하고 나왔는데 낯선 이가 나를 불렀다. 열흘이 지났지만 이름을 알지 못했다. “머리 감고 나면 수챗구멍의 머리카락은 그때그때 빼셔야 해요.” 잔뜩 짜증 난 얼굴이었다. 몰랐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으니 알 길이 없었다. 카톡방 공지에 없는 규칙이었다. 생각해보면, 샤워 뒤 머리카락을 치우는 건 상식일 수도 있겠다. 셰어하우스이니 모두가 분담해야 하는 공동 작업은 필수였다. 분리배출,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욕실 청소, 거실 청소 등 여러 집안일을 담당하는 순서를 정했다.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작업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려면 자기 순번을 잊지 않아야 한다.

8월6일: 누군가 있었다

8월16일: 포기할 수 없는 것과 놓아야 하는 것

1번 방 선주(가명)씨였다. 24살. 대화를 하면서도 태블릿PC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광주에서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올해 초 서울시 공무원이 됐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러니 실수할 일도 없다. 1번 방 욕실 사용 때문에 충돌이 가끔 있지만 “지금 생활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8월18일: 유령이 산다

동네 빵집과 약국, 큰 마트의 위치를 파악했다. 물어볼 사람이 마땅치 않아 동네를 한 바퀴 산책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뒤이어 탄 여자가 이미 내가 누른 층 버튼을 확인한 뒤 다시 휴대전화로 눈길을 돌렸다. 여자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 비밀번호를 눌렀다. 내가 살며시 뒤에 서자 여자가 짧게 목례를 했다. 4주 만에 처음 얼굴을 본 하나(가명)라는 이름의 3번 방 동거인이었다. 하나씨는 2인실 방을 혼자 쓴다.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아 교류가 없(는 것으로 안)다.

냉장고 안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맥주캔과 빵이 있는 칸, 반찬통과 채소가 있는 칸, 두유와 초콜릿만 있는 칸도 있다.

8월20일: 아로니아 한 알

일요일 오후, 늦잠 자고 일어나 부엌에 가보니 1번 방 아영(가명)씨가 유리병에 아로니아와 설탕을 넣고 청을 담그고 있었다. 옆에 앉아 슬쩍 쳐다보니 “아파트 단지 안에 장이 섰길래 아로니아를 사봤다”며 한 알을 입에 넣어주었다. 블루베리처럼 생긴 게 아주 썼다. 내가 인상을 찌뿌리자 아영씨는 막 웃었다. 눈이 쭉 찢어져 인상이 세 보였는데 털털한 성격이었다. 알고 보니 다섯 자매 중 넷째였다. 아영씨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아 셰어하우스를 선택했다. 그는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함께 입주한 사람들과 마음이 잘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 사람이 너무 많다”고 투덜댔다.

8월23일: 공동주거의 흔한 문제들

새벽 3시30분. “욕실에 담배 냄새가 가득한데 설마 누가 담배를 피운 건 아니겠죠?” 카톡 알림이 떴다. 우리 방 민주씨는 이 집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피운다. 밤에도 1층으로 내려간다. 절대 집에선 피우지 않지만 옷에 밴 담배 냄새 때문에 자주 경고를 받는다. 이런 저격성 카톡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엔 거실의 담배 냄새를 위층 소행으로 여긴 이가 경비실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평소 교류하지 않으니 오해가 쌓인다. 한번 쌓인 오해로 틀어진 관계는 이 집에선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해소할 필요도 없다.

9월1일: 작별

내가 짐을 빼자 같은 방 민주씨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는 “방을 빼고 싶다”며 “계약금은 어떻게 했고, 얼마나 손해 봤느냐”고 물었다. 이곳은 끊임없이 타협이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이 집에 머무는 이들은 포기할 수 없는 무엇 때문에 다른 무엇을 포기한다. 쾌적한 환경과 넓은 거실을 위해서는 온전한 개인 공간을, 안전을 위해서는 편한 휴식을 포기한다. 누군가는 소속의 불안정성 때문에 짧은 계약 기간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들은 자신의 조건을 위해 원래대로라면 한 가족을 위해 지어진 아파트에서 낯선 이들과 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 아파트는 시대에 맞게 거듭난 현대판 고시원이자 각자의 욕망이 복잡하게 뒤엉킨 공간이다. 우린 이곳에 머문다는 이유로 ‘서울시 ○○구’로 시작하는 그럴싸한 대기업 건설사의 대단지 아파트를 잠시나마 주소지로 사용할 수 있다. 난 자랑스러운 서울 낙원구 행복동 래미지오의 주민. 정말 그런가? 우린 일단 그렇다고 믿고 머무는 것이다.

서울에서 머문 잠깐의 주거공간

<한겨레21> 교육연수생이 된 뒤 서울에 6주간 머물겠다고 결심했을 때 “서울로 유학 간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난 후배가 생각났다. 후배도 서울에 연고가 없었다. 전화로 안부를 묻자 그는 “다시 내려왔다”고 답했다. 후배는 서울에서 6개월을 버텼다.

두 업체는 성격이 다르다. 첫 번째 업체는 자신의 집을 셰어하우스로 리모델링해(혹은 셰어하우스 용도로 집을 지어) 운영하려는 건물주와 입주자를 연결해준다. 업체는 홍보와 관리만을 담당했다. 반면 내가 거주한 두 번째 업체는 직접 아파트 몇 채를 운영한다. 여성 전용, 남성 전용으로 구분한다. 나와 같은 집에 머물며 친해진 현지씨는 “아파트 분양 때부터 세놓을 생각으로 투자자 여럿이 모인 걸로 안다”고 말해줬다.

서울에 잠깐의 주거공간이 필요한 경우 셰어하우스는 1순위 선택지가 된다. 거주 6주 동안 매주 네댓 명이 집을 보러 왔다. 비용이 저렴하지는 않다. 주거 대책으로 공동주거의 가능성을 내세운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속 교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