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스태프 80여 명 중 정규직은 몇 명일까?

2015-05-31     곽상아 기자
ⓒKBS

자네 방송작가로 일해 볼 텐가 ‘헐. 값. 에’)가 나간 뒤, 방송 종사자들의 제보가 잇달았다. 막내 작가들은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잦은 야근에도 월급100~120만원을 받았고, 스스로를 ‘잡가’라고부를 정도로 글 쓰는 일보다 심부름 등 잡일이더 많았다. 문제는 이런 현실이 막내 작가들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타는 웃지만…나는 슬픕니다

(한국방송2)의 스태프 80여명 중에 정규직은 몇명일까? 정답은 6명이다. <한국방송> 소속인 피디 6명을 제외한 나머지 스태프는 하청업체(카메라팀, 브이제이팀, 음향팀, 조명팀, 동시 녹음팀 등), 파견노동자(에프디 등), 프리랜서(방송작가 등) 등 모두 비정규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방송>의 한 예능 피디는 “<1박2일>은 그나마 정규직이 많은 편이다. 정규직이 2~3명인 프로그램도 많다”라고 말했다.

■ 하청과 프리랜서가 만드는 방송?

의 한 예능 피디는 “프로그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새로운 프로그램이 결정되면 방송사의 정규직 피디가 조명팀, 음향팀, 카메라팀, 동시 녹음팀 등 5~6개 외부 업체와 각각 계약을 맺고 전체팀을 꾸린다”라고 말했다. 하청을 맡은 각 팀의 팀장은 다시 팀원 일부를 비정규직으로 조달하기도 한다. 카메라팀이 다시 브이제이(VJ)팀에게 하청을 주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하청도 이어진다. 이 예능 피디는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장으로 화려한 촬영기법 등이 요구되면서 카메라가 더 많이 필요해졌고, 10여년 전 브이제이(VJ) 등 야외촬영 인력을 시작으로 비정규직을 쓰게 됐다”라고 말했다. 4~5년 전부터는 에프디(FD·진행요원)만 전문으로 파견해주는 업체도 따로 생겼다. 몇명의 인력들이 헤쳐모여 식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지상파 드라마 일을 주로 맡는 경력 2년차 에프디는 “정식으로 회사를 차린 건 아니지만, 드라마가 시작되면 에프디 몇명이 팀처럼 함께 움직인다”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상캐스터가 기상기자로 입사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계약직이 늘기 시작했고, 이후 다시 프리랜서로 바뀌었다. 지상파 기상캐스터 ㄴ씨는 “신분은 프리랜서인데 방송사 보도본부 소속으로 기자들의 지시를 받는 기형적인 구조”라고 말했다. 계약직 때는 그나마 기본 월급에 뉴스당 수당이 나왔지만, 프리랜서가 되면서 기본 월급 없이 수당(출연료)만 받는다. 하지만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에는 출연할 수 없다. 행사 진행 등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기도 한다. ㄴ씨는 “프리랜서라면서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능력에 합당한 페이를 주는 것도 아니다. 날씨 보도에 필요한 최소 인원이라도 정규직으로 뽑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150만원 못벗어나는 막내들…방송질 저하로

의 한 예능 피디는 “한류가 시작되고, 드라마 예능의 제작규모가 커지면서 한 하청업체가 회당 1000만원 이상을 가져가기도 한다. 여러 프로그램 일을 동시에 맡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와 주로 일하는 경력 10년의 프리랜서 편집 감독은 회당 250만원(월 1000만원)을 받기도 한다”고 <에스비에스>의 한 예능 피디는 말했다.

한 외주업체 대표는 “일이 계속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규직을 뽑으면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 정규직 신입 직원을 뽑더라도 석달 정도는 인턴 기간을 둔다”라고 말했다. 에프디 ㄱ씨는 “에프디 일이 없을 때는 조명이나 음향팀 막내로 일당 7만원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외주 프로덕션에서 일한 한 외주 피디는 “작가 뿐 아니라 에프디, 에이디, 피디 모두 열정 페이로 일한다. 조연출과 막내 작가는 가장 안좋은 쪽에 속한다”고 말했다. 에프디 ㄱ씨는 “나는 월 200만원을 버는데 이정도면 이쪽 업계에서는 수입이 좋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드라마가 방영되는 5개월 동안 하루 2시간도 못자는 등 노동강도를 감안하면 정당한 대우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2000년대 급속 증가…대안은

는 “정규직 중심의 고용형태에서 2000년 초중반 계약직 비정규직이 확산됐고 2000년 중후반부터 계약직에서 프리랜서화가 진행됐다”고 분석했다.

케이블, 아이피티브 등 새로운 방송 플랫폼과 종합편성채널이 생겨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기 시작한 방송사의 위기 의식도 비정규직 확산을 부채질했다. 비정규직 비중을 높이면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의 또다른 간부급 피디는 “방송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아, 저비용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사용자 우위의 노동시장 구조도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절한 임금과 근로조건 등 노동자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는 현실, 직군의 특성에 관계없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무조건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행태는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영호 부산대 교수(언론학)는 “방송산업 특성상 비정규직을 쓰더라도, 적어도 임금은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을 지급하고, 분야별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현실을 개선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출범한 언론노조 산하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미로찾기) 관계자는 “업종별로 처한 상황과 고용 방식, 요구 사항 등이 다르기 때문에 분야별로 실태를 조사해 대안을 찾으려고 한다. 당장은 업종별로 임금단가와 각종 수당 등을 자세하게 명시한 방송제작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