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수교' 카드가 남아 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핵 포기는 없다"고 외치고 있지만, 한가닥 핵 포기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즉, 북한은 김정은의 육성으로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핵 포기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미국과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불가침이 보장되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북한의 이 조건은 표현만 거칠어졌을 뿐 북핵 문제가 발생한 이래 지난 20여년간 일관해온 주장이다.

2017-09-11     이종석
ⓒKCNA KCNA / Reuters

어떤 이들은 원유 공급을 중단하면 북한의 생명줄을 끊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만,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그것이 북한 경제에 고통을 줄 수 있지만 북한을 굴복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대신에 북한 주민의 고통이 증대하면서 북한 사회의 긴장이 높아지고, 이 과정에서 '이판사판'식의 정서가 확산되면서 그 히스테리가 고스란히 휴전선이나 북방한계선(NLL)에서 군사적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우리 정부가 대북 제재에 앞장설 때 그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는 제재 국면에서도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신중하게 전략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핵 포기는 없다"고 외치고 있지만, 한가닥 핵 포기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즉, 북한은 김정은의 육성으로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핵 포기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미국과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불가침이 보장되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북한의 이 조건은 표현만 거칠어졌을 뿐 북핵 문제가 발생한 이래 지난 20여년간 일관해온 주장이다. 김정은이 핵무기와 아이시비엠을 보유하려는 실질적인 목적을 추정해도 결론은 비슷하다. 김정은은 대체로 ①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한 대응 ②국내 권력기반 강화 ③북한 정세에 대한 외부세력의 물리적 개입 차단(즉, 불가침 환경 확보) 등의 목적으로 핵 개발에 매달리는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김정은 체제의 안정적 유지가 핵심 목적이다. 이 중 ③항은 미국과 관계개선을 하는 대신에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한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가 민주혁명 과정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습을 받아 몰락하고 결국 사망한 사건(2011년 10월)을 계기로 확고해졌다. 핵 개발을 통한 김정은의 권력기반 강화라는 ②항은 이미 어느 정도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핵 포기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대화조차 불가하다는 입장이어서 이 제안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미국이 현재의 북핵 상황을 진정 절박한 위협으로 느낀다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국으로서는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사실 위기가 막바지로 치닫기에 '최후의 대안'이라고 표현했을 뿐, 북-미 수교는 북핵 문제의 근원이 양국 간 불신이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근본 해법이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