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 일을 잘 나가던 여성시인의 철없는 해프닝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나는 이 일을 한국의 비혼 중년여성들의 형편없이 열악한 삶의 질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오죽하면 천하의 최영미가 근로장려금 수급사실을 밝히고 월셋방을 전전하는 게 끔찍해 자신을 호텔홍보요원으로 '판매할' 생각까지 했을까 싶다. 그것은 한 부황기 든 여성시인의 헛소리가 아니다. 내겐 그 소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헬조선의 최저점을 통과하고 있는 이 땅의 거의 모든 여성들이 타전하는 SOS 신호로 들린다.

2017-09-12     김명인

다수 여론은 부정적인 것 같다. 그를 마치 노력 없이 공짜나 바라는 'OO녀' 수준으로 폄하하거나, 잘 봐줘서 물정 모르는 철부지쯤으로 치부하는 듯하다. 또 어떤 이는 가난 속에서도 성실한 밥벌이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다른 시인들과 비교해서 그를 질타하기도 한다. 긍정적인 여론이라야 시인으로서 가능한 상상력이라거나 역시 시인적 위트의 소산으로 '어여삐' 여겨주자는 정도인 것 같다.

나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최근 〈반지하 엘리스〉라는 시집을 낸 역시 싱글이자 엄마이기도 한 신현림 시인의 지지리도 힘겨웠던(아니 여전히 힘겨운) 삶이 떠올랐다. 나는 이 일을 잘 나가던 여성시인의 철없는 해프닝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나는 이 일을 한국의 비혼 중년여성들의 형편없이 열악한 삶의 질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이들 말고도 나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서 빈곤선에서 허덕이는 수많은 비혼 여성문필가들의 삶을 많이 접한다. 이것은 최영미, 혹은 신현림만의 문제가 아니고 결국은 한계노동시장에서 생계선 아래 위를 부침할 수밖에 없는 고학력 비혼여성들의 기울어진 고용 운동장의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성실하게 노동하지 않고 허황한 소리나 한다고 질타하는 것은 젠더적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폭력적인 것이다. 그들은 훌륭한 시인이자 전문가로서 합당한 사회적 역할을 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들에게 출판사 번역일이나 시키고 심지어 이를테면 곰인형 눈알붙이기 같은 수준의 막노동일 같은 거라도 하며 '성실하게' 먹고 살라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