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안전성과 여성건강 확보의 훼방꾼들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 관리 책임이 있는 식약처는 이에 대한 조사 연구를 실시하지 않았으며,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의 전성분 공개나 안전성 규정 강화 등의 요구도 묵살해 왔다. 오죽했으면 환경단체가 자비를 들인 조사 결과까지 첨부해서 정책 개선을 건의했을까 싶다. 책임을 방기한 식약처가 그런 시민단체의 노력을 비과학적이라고 비하하며 공격하고 나섰으니 적반하장격이다. 식품과 의약품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식약처의 무사안일은 위험 수위가 아닌지 우려스럽다.

2017-09-04     장재연

식약처의 갈팡질팡 보도자료

식약처는 8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여성환경연대의 시판 생리대에서의 휘발성 유기화합물 검출 결과를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어 이를 근거로 정부나 기업의 조치가 어렵다고 밝혔다.

생리대 유해화학물질 규제 촉구 기자회견, 사진 한겨레

여성환경연대의 문제 제기

이런 결과는 보통의 경우에는 바로 언론을 통해 발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성환경연대는 그런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2017년 3월 식약처에 공문과 함께 결과 자료를 보내고 해당 기업들과도 공유했다.

대안생리대 운동을 펼치는 여성환경연대, 사진 여성환경연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식약처

여성환경연대는 권위 있는 대학기관의 실험에 의해 일회용 생리대에서 각종 유해물질이 검출됐으니, 그것이 유해한 수준인지 아닌지, 현재 식약처가 실시하고 있는 검사 항목으로는 일회용 생리대 제품의 안전성을 확보하는데 불충분한 것은 아닌지를 묻고, 전문적인 검토를 해달라고 한 것이다.

식약처의 무사안일

또한 심한 생리통으로 고생하다 대안 생리대로 바꾸면 증상이 크게 호전되었다는 경험이 입소문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공유되면서,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구심은 더욱 커져 왔다.

오죽했으면 환경단체가 자비를 들인 조사 결과까지 첨부해서 정책 개선을 건의했을까 싶다. 책임을 방기한 식약처가 그런 시민단체의 노력을 비과학적이라고 비하하며 공격하고 나섰으니 적반하장격이다. 식품과 의약품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식약처의 무사안일은 위험 수위가 아닌지 우려스럽다.

식약처 판매허가를 받은 안전한 제품이라고 했으나 결국 환불에 들어간 제품. 사진 뉴스1

식약처의 비과학성, 비전문성, 무성의

여성환경연대의 실험은 일회용 생리대에서 방출되는 휘발성 화학물질을 분석한 것으로 시험성적서를 보면 벤젠, 톨루엔, 자일렌, 트리메칠벤젠 등 방향족 탄화수소류를 중심으로 염소계 탄화수소류, 아세톤 등을 분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스틸렌 부타디엔 공중합체에 대해서는 분석실험을 수행하지도 않았는데, 엉뚱한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식약처가 생리대 이상 사례를 접수한다고 홈페이지에 개설한 설문은 유치하고 무성의하기 이를 데 없다. 과연 식약처가 이 문제에 대해 눈곱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식약처 홈페이지 초기 화면

그러나 식약처 설문을 보면 전신반응, 눈/코/귀/입, 심혈관, 위장관, 간 및 담도, 호흡기, 신장, 근골격 등등을 나열하고 있다.

가장 경악스러운 질문은 제품 사용으로 인한 증상 때문에 초래된 결과를 묻는 항목이다. 입원, 중대한 불구, 선천적 기형, 생명의 위협, 사망 등에서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 설문은 아마도 비특정 의약품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적용하던 항목을 하나도 수정하지도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생리대 안전성에 관한 논란이 사회적으로 이렇게 뜨거워도 이런 수준의 설문을 겁도 없이 홈페이지 첫 화면에 내거는 식약처, 이보다 더 비과학적이고, 비전문적이고, 무성의할 수 있을까?

식약처 생리대 이상사례 설문 항목의 일부

중구난방 전문가와 언론

여성환경연대는 그동안 정부, 학계가 무시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그러나 엄청난 인구 집단이 사용하고 있고 부작용을 염려하는 제품의 안전성에 대해 정부와 학계의 관심을 촉구하는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증거도 없이, 아니면 말고 식의 어이없는 음모론이나 추측성 기사로 사건의 본질을 훼손하고 혼탁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미흡한 생리대 안전성 평가

생리대에 유해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사용 과정을 통해 체내로 흡수된다면, 심각한 보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설사 유해물질 함량이 매우 작아 개별 유해성은 낮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인구 집단이 매우 자주 그리고 장기간 노출되는 경우이기 때문에, 그에 비례해서 보건학적 심각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성들의 일회용 생리대 사용이 생리통이나 생리불순 등 이상 증상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심층적인 연구 조사 역시 필요하다.

사진 여성환경연대

생리대 제조 회사가 지켜야 할 윤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들은 제품 사용에 의한 유해성만이 아니라 생산과정과 심지어 폐기된 이후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과 비교해서 이번 사태에서 숨을 죽이고 있듯 침묵하고 있는 생리대 제조회사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으로 불편하다.

사진 뉴스1

만시지탄, 생리대 안전성 검증

인간의 절반인 여성, 그들이 달마다 겪는 월경은 생명 탄생을 준비하기 위한 가장 고귀한 생리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남성 중심 사회•문화가 불결 또는 부정한 이미지와 연결해 터부시하고 사회적 침묵을 강요해 온 것이 생리대의 안전성 검증까지 늦어지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장재연의 환경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