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공작'이 특별히 추악한 여론조작인 이유

댓글 알바가 알바비로 받은 돈은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고 국정원의 지침에 따라 게시물을 작성하는 것에 대한 대가이다. 이처럼 국정원과 댓글 알바는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거래했고, 그 결과 댓글 알바는 표현적 자유라는 기본권을 향유하는 민주적 시민이기를 포기했다. 시쳇말로 댓글 알바는 영혼과 양심을 판 것이다. 그렇게 국정원은 국민들의 세금을 이용하여 영혼과 양심이 없는 "좀비 시민"을 양산했던 셈이다. 좀비 시민의 양산이 댓글 공작의 첫 번째 단계라면, 그것의 두 번째 단계는 인터넷 토론 공중에 대한 집단 기만이다.

2017-09-01     최성호
ⓒ뉴스1

그렇게 말하고 나면 수 만가지 질문이 머리를 스친다. 한국인이 한민족의 중흥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외국인들은 어떤가? 한국에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로버트 할리와 같은 귀화외국인들은? 해외에 체류하는 한국계 외국인들은? 목적론적 존재론의 창시자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는 이 기막힌 주장을 접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권력자들이 국민들의 사고를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고 많다.

그러던 중 정보의 유통과 여론의 형성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니 그것이 바로 인터넷의 등장이고 소셜미디어의 보편화이다. 소수의 정보제공자가 정보를 독점하며 자신의 구미에 맞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다수의 정보수용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여론을 지배하던 불평등한 상황이 개선되면서, 모두가 정보제공자이면서 동시에 정보수용자인 평등한 소통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인터넷 뉴스의 댓글, 다음 아고라, 오늘의 유머와 같은 사이버 공간은 자유롭고 동등한 시민들이 공적 이성에 근거하여 함께 토론하고 숙의하는 하버마스적 공론장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것으로 간주되기에 충분했다. 성별, 나이, 재산, 직업 등에 따라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숙의한다는 것은 인터넷 이전 시대엔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선 그런 일상 속의 불평등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서로를 로그인 아이디로만 대면하는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때론 욕설과 험담이 오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인터넷은 시민들이 정보독점자들의 여론 조작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으며 공적 이성을 통해 함께 논쟁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런 이유로 다음 아고라와 같은 인터넷 공론장은 숙의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바로 이 새로운 공론장의 새싹이 무참히 침탈당했던 것이다. 바로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이다.

국정원 댓글 공작이 사악한 것은 토론 자체, 담화 자체를 직접적으로 훼손하고 왜곡했다는 사실에 있다.

국정원 댓글 공작이 사악한 것은 그것이 기존의 여론 조작과 달리 단순히 토론이 이루어지는 배경 조건을 조작한 것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 상에서 벌어지는 토론 자체, 담화 자체를 직접적으로 훼손하고 왜곡했다는 사실에 있다.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그 과정에 국정원은 댓글 알바들과 부도덕한 거래를 했고 인터넷 토론 공중을 집단적으로 기만했다. 이런 점에서 국정원 댓글 공작은 여타의 여론 조작과 비교해 봐도 훨씬 더 부도덕하고 악질적이다.

국정원은 세금을 이용하여 영혼과 양심이 없는 "좀비 시민"을 양산했던 셈이다.

국정원은 댓글 알바가 인터넷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 것에 대한 대가로 알바비를 주지 않았다. 국정원의 알바비는 댓글 알바가 특정 논조의 게시글, 즉 이명박·박근혜를 옹호하고 그에 비판적인 세력을 음해하는 게시글을 작성하는 것에 대한 대가였다. 그런 만큼 국정원과의 거래 하에서 작성되는 댓글에 관한 한 댓글 알바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상실하였다.

좀비 시민의 양산이 댓글 공작의 첫 번째 단계라면, 그것의 두 번째 단계는 인터넷 토론 공중에 대한 집단 기만이다. 국정원은 좀비 시민들을 통해 뉴스 댓글이나 다음 아고라와 같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민주적 숙의에 참여했던 시민들을 집단적으로 기만했다. 국정원에서 돈을 받고 인터넷에 게시물을 올린 댓글 알바의 목적은 애초 타인과의 대화나 토론이 아니었다. 그들의 게시물은 인터넷을 떠도는 좀비 같은 단어들의 나열일 뿐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향유하는 인간들이 생각의 간극을 메우기 위하여 수행하는 담화 행위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영혼이 없는 좀비 언어가 인터넷 공간을 도배하면서 인간의 언어 행세를 하며 인터넷 공중을 속였다. 댓글 알바는 좀비 언어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민이 공적 숙의에 참여하는 것인 양 인터넷 토론 공중을 기만했던 것이다. 실제로 댓글 공작이 여론 조작에 있어 그렇게 효과적일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공론장이 그러한 기만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에 말미암은 바 크다.

이런 추악한 범죄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끔 보다 엄정한 단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 '내란죄'로 단죄해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국정원 댓글 공작이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고 5년이 지난 지금 그것에 대해 수사를 하는 것은 정치보복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홍준표 대표가 어떤 근거에서 댓글 공작이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수백 수천 명의 댓글 알바들이 서로 보조를 맞추어 기만적인 게시글을 작성할 때 댓글 공작은 가히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나는 추측된다. 실제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개인들이 어떻게 믿음을 형성하는지에 관한 학문인 사회인식론(social epistemology)의 최근 이론들이 그런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아쉽게도 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자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등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