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TV, '음식 포르노'를 배설하다

2015-05-30     남현지

의 한 장면." data-credit="MBC">

[토요판] 안인용의 ‘좋아요’가 싫어요

‘먹방’이 싫다, ‘쿡방’도 싫다

에 출연해 꽁치를 넣은 샌드위치를 선보인 맹기용 셰프는 사흘이 넘도록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연예인들은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음식을 먹고 리액션을 하느라 바쁘다. 요리를 내세우지 않은 일반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다.

에서는 매회 마지막에 극중 레스토랑 오너 셰프인 남자주인공이 등장해 요리법을 알려준다. 최근 종영한 한국방송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는 마지막회에서 주인공들이 극중 요리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하반기에는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 한국판을 비롯해 요리 관련 웹툰을 원작으로 한 네 편의 드라마가 준비중이란다. 종편에서는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음식에서 지금 당장 먹어야 하는 영양분을 찾아내고 이에 대한 요리법을 장수 비결로 귀띔한다. 요즘 눈에 띄는 광고는 다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 광고인데, 그 짧은 광고에서도 먹는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지상파, 종편, 케이블 채널 가리지 않고 먹방이나 쿡방을 내보내는 지금의 이 편성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시청률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는 아이템이라면 뭐라도 가져다 쓰고 싶은 게 제작진의 마음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천편일률적인 티브이를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난해까지만 해도 먹방과 쿡방이 대세가 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집이나 자동차 같은 중산층의 필수조건을 갖추는 데 실패한 젊은 세대의 결핍된 욕망 분출이라든지, 늘어난 일인가구로 인한 사회적 현상이라든지, 성취감이 사라진 시대에 유일하게 남은 만족감과 힐링의 방법이라든지, 일정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이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든지, 에스엔에스(SNS) 등 커뮤니케이션의 변화와 연계해 나타나는 문화현상이라든지. 그런 이유로 인해 먹방과 쿡방이 공감대를 얻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편성표를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드라마·예능 할것 없이 먹방·쿡방

맥락도 욕망에 대한 고민도 없이

식욕이란 버튼 누른다, 시청률 위해

정보제공 가면 쓰고 노골적 홍보

시청자는 자금 대주는 소비자일뿐

냉장고 말고 TV를 부탁할 때다

는 강레오 셰프를 초대해 출연진에게 ‘애인을 오늘 밤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을 창의적인 음식을 만들라’는 미션을 줬다. 한국방송 <해피투게더3>은 빅뱅을 초대해서 폐지된 코너 ‘야간매점’을 되살렸다. 한국방송 <출발 드림팀 시즌2>도 3주 동안 ‘음/식/전/쟁 실미도 와일드 셰프’ 특집을 내보냈다. 요리 관련 프로그램에 요리하는 이는 셰프건 출연자건 남성 일색인 것마저 똑같다. 이를 양성평등과 연관시키는 것도 낯간지럽고 민망하다. 요리하는 남성의 모습이 신기해서, 그리고 차승원이 뜨고 최현석과 백종원이 인기를 끄니까, 이 두 가지 이유가 전부다. ‘집밥’이나 ‘엄마의 손맛’ 같은 감성이 필요할 때만 여성을, 아니 엄마를 부른다. 농사나 유기농 같은 전원 냄새 물씬 풍기는 ‘신토불이’스러운 아이템을 들고나오기도 하지만 결국 ‘킨포크’식으로 소비될 뿐 그 안에 진짜 먹거리에 대한 고민을 찾을 수는 없다. 게으른 티브이가 만든 지루한 풍경이다.

점점 자극적이 되어가는 먹방과 쿡방은 음식 포르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욕망을 원초적으로 자극하는 포르노와 지금의 요리프로그램이 보여주는 화면은 크게 다를 게 없다. 밝은 조명 아래 고화질의 카메라로 먹음직스럽게 촬영한 요리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나도 모르게 침이 고인다.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이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고 소리를 내며 음식을 먹는다. 음식을 먹은 이는 음식의 맛을 보여주는 몇 가지 표정을 지으며 “와!” “음!” 같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익숙한 배경음악이 깔린다. 또다시 침이 고인다. 그 모습이 대단히 아름답거나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본능을 자극하도록 연출됐기 때문에 저항할 방법이 없다. 요리하거나 먹는 모든 장면이 포르노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 장면이 필요할 때도 물론 있다. 자극과 흥분에서 그치지 않고 그래서 그 욕망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 살피며, 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그런데 지금의 먹방과 쿡방에 ‘맥락’이 있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나? 지금의 티브이는 시청률을 위해 식욕이라는 본능의 버튼을 누르는 것뿐이다.

빅뱅이 출연한 <해피투게더3> 야간매점

내가 돈으로 보이니

는 강아지인 밍키가 사료를 먹는 장면에서도 밥 먹는 밍키 옆에 씨제이 사료를 브랜드가 잘 보이도록 세워뒀다. 씨제이가 두드러질 뿐이지 다른 채널의 요리프로그램도 제품 광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종편에서 장수 비결 요리법이나 건강식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끝나고 채널을 돌리면 바로 옆 채널 홈쇼핑에서 바로 그 제품을 판다.

음식 앞에서 티브이가 품격을 잃었다. 양심도 잃어간다. 요리프로그램을 통해 대단히 의미있는 걸 찾아내라는 것도, 깜짝 놀랄 만큼 새로운 기획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웃음과 재미를 만들어내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자는 얘기다. 냉장고를 부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먹방과 쿡방으로 가득한 티브이를 부탁해야 할 판이다. 고민 없는 티브이는 금세 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