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자들〉 언론의 미래를 막지 마라

우리는 망가진 것을 손쉽게 조롱하고 비난하지만 정작 그 조롱과 비난에 어울리는 당사자들은 죄책감을 느낄 양심이 없고, 관심도 없다. 정작 그런 조롱과 비난에 직면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건 그럴 필요가 없는 이들이다. 어쩌면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어떤 질문과 맞닥뜨린다. '우리는 정말 언론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언론을 지킬 수 있을까?'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타락한 언론사를 외면해버리면 그만이라고 믿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비난하고 손가락질해서 광장에서 밀어내버리면 끝나는 일이라고 단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락한 공영방송사는 독버섯처럼 방치될 뿐이다.

2017-08-30     민용준

한때 광장에서 MBC라는 구호를 희망처럼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MBC에는 〈PD수첩〉이 있었고, 손석희의 〈100분 토론〉이 있었으며, 신경민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데스크〉의 '클로징 멘트'가 있었고 김미화가 진행하는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MBC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한도전〉? 어쨌든 광장에서는 더 이상 MBC를 외치지 않는다. 되레 광장에서 나가라고 악을 쓴다. MBC는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공범자들〉은 바로 MBC를 망친, 보다 정확하게는 한국 언론을 망친 공범자들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본래 MBC 〈PD수첩〉을 제작하던 최승호 PD가 연출을 맡았다. 그는 2012년에 당시 MBC 사장이었던 김재철 퇴진을 위한 파업에 참여했다가 2012년 MBC에서 해임당했다.

이번엔 MBC였다.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벌였는데 노무현 정권에서 금지한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논의했고, MBC 〈PD수첩〉은 이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여론이 폭발했다. 촛불을 밝힌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30개월 이하의 미국산 쇠고기만 수입하기로 미국과 재협상했다. 저널리즘의 승리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지 않았다. MBC로 검찰이 들이닥쳤다. 쇠고기 수입 협상을 한 공무원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PD수첩〉을 고발했다는 것이다. PD들은 방송국에서 버텼지만 결국 체포됐다. 자택 압수 수색도 이어졌다. 끝이 아니었다. 클로징 멘트로 정부 비판을 하던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앵커가 경질됐다. 〈100분 토론〉의 손석희가 물러났다. 방송문화진흥회에 친정권 이사들이 대거 임명됐다.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은 사장을 바꿀 권한을 갖고 있었다. 엄기영 MBC 사장은 이사회에 소집된 뒤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김재철 사장이 부임한 뒤 〈PD수첩〉에서 일선 PD들이 타 부서로 발령을 통보받았다.

〈공범자들〉은 두 가지 질문에 답하는 작품이다. '우리는 어떻게 언론을 잃었는가?' 그리고 '우리에겐 왜 언론이 필요한가?' 〈공범자들〉이 첫 번째 질문에 답해주는 과정은 큰 맥락에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 정책에 쓴소리를 내는 언론사의 보도 기능을 구조적으로 망가뜨리는 권력자들의 몰염치한 태도는 공정성을 수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분투하는 기자와 PD들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쓸쓸한 풍경 속에서 분노보다도 허탈함을 안긴다. 차라리 미드에서나 봤던 정교한 음모론 같은 것에 압도되는 것이라면 낫겠다는 심정이랄까. 그 와중에 공영방송은 권력이 가만두질 않으니 MBC는 민영화돼야 한다고 말하는 전 MBC 사장 김재철의 태도는 부역자들의 정확한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라 되레 흥미롭기도 하다.

"왜 언론을 감시견이라고 합니까? 짖어야죠. 문제가 생기면. 그런데 짖는 게 아니고 그냥 잠들어버린 거 아닙니까. 아니죠. 엄밀히 말하면 잠든 게 아니죠. 외면한 겁니다. 개뼈다귀 몇 개 더 먹으려고 외면해버린 거죠." KBS 새 노조위원장인 성재호 기자의 말처럼 공영방송사는 사회적 공정성을 외면하고 정권에 부역하는 이들에 의해 몰락했다. 방송사로서의 신뢰도, 기자들의 사기도 바닥에 떨어지는 사이, 부역자들의 뻔뻔함만 떠올랐다. 〈공범자들〉은 지난겨울 촛불을 밝힌 광화문 광장 주변에서 "엠 병신 차 빼라"라며 욕지거리하는 군중을 비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묵묵히 취재했던 MBC 노조위원장 김연국 기자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최순실 게이트는 나라의 기본 틀을 농단하고 파괴한 초유의 사건이죠. 그런데 KBS, MBC, 특히 MBC는 이 사건을 다루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아니, 침묵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방해했고, 검찰 수사를 방해했고, 주변적인 것들을 부각해서 사건을 본질을 흐리려 했습니다. 저는 결국은 MBC 경영진의 핵심인 안광한 사장, 김장겸 본부장 이 두 사람에게 핵심적인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뉴논스톱>과 〈내조의 여왕〉을 연출한 김민식 PD는 MBC 사옥에서 페이스북 라이브로 "김장겸을 물러가라!"라고 외치는 퍼포먼스를 했다. 해맑게 웃으며 이를 말하던 김민식 PD가 갑자기 흐느껴 울며 아내로부터 들었던 말을 전한다. "당신이 이렇게까지 했는데 내부에서 아무도 안 하면 당신은 또라이야. 당신 혼자 또라이되고 마는 거야."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김연국 기자를 비롯한 MBC 기자와 PD들의 페이스북 라이브가 이어졌다. 어쩌면 당신도 모르는 곳에서 그들은 더욱 외롭게 싸우고 있다. 당신과 나 우리의 공영방송을 위해. 어쩌면 지금 우리가 힘을 실어줘야 하는 언론인은 손석희가 아니라 김연국일지도 모른다.

현재 MBC와 KBS에 남아 공영방송의 가치를 제 자리로 돌리고자 파업에 나선 기자들과 PD들을 지지한다. 부디 권력의 개뼈다귀나 물고 뜯으려는 부역자들을 밀어내고 공영방송의 주역으로서 다시 공정한 목소리를 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