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터 피파 회장의 어휘를 통해 본 세계 인식

오랫동안 블라터 회장을 지켜보면서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가 '패밀리'(family·가족)가 아닌가 합니다. 그는 피파와 관련된 모든 행사에서 축구인이나, 결정 사항 공개, 중계·후원 파트너 등을 거론할 때 패밀리를 씁니다. 그런데 패밀리라는 뜻이 참 중언적입니다. 피붙이로 이뤄진 가족을 떠올릴 때 우리는 사랑과 평화를 떠올립니다. 또 관용과 자애, 효심 같은 것도 연상이 됩니다. 패밀리라는 말은 동족이나 민족까지 확장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블라터 회장이 패밀리를 말할 때 저는 항상 '마피아식 패밀리'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2010년 피파 집행위에서 2018 러시아, 2022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를 결정하고, 그것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에서 블라터 회장이 "우리는 패밀리"라고 말한 장면이 기억납니다.

2015-05-31     김창금
ⓒASSOCIATED PRESS

오랫동안 블라터 회장을 지켜보면서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가 '패밀리'(family·가족)가 아닌가 합니다. 그는 피파와 관련된 모든 행사에서 축구인이나, 결정 사항 공개, 중계·후원 파트너 등을 거론할 때 패밀리를 씁니다. 그런데 패밀리라는 뜻이 참 중언적입니다. 피붙이로 이뤄진 가족을 떠올릴 때 우리는 사랑과 평화를 떠올립니다. 또 관용과 자애, 효심 같은 것도 연상이 됩니다. 패밀리라는 말은 동족이나 민족까지 확장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블라터 회장이 패밀리를 말할 때 저는 항상 '마피아식 패밀리'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2010년 피파 집행위에서 2018 러시아, 2022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를 결정하고, 그것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에서 블라터 회장이 "우리는 패밀리"라고 말한 장면이 기억납니다.

사실 집행위원회를 구성하는 24명이 피파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모든 결정에는 블라터 회장의 영향력이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블라터 회장은 흔히 뇌물이나 불법적인 돈거래에 직접 연루된 적은 없습니다. 외신에서는 이를 두고, "블라터와 부패 사이에는 항상 다른 사람이 끼어 있다"라고 묘사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불법행위에 잘 노출되지 않는다는 뉘앙스지만, 실제 사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일을 아예 벌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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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터 회장이 강조하는 또 다른 단어로는 디벨로프먼트(develpment·개발)가 있습니다. 원래 비즈니스 마인드가 뛰어난 블라터 회장은 월드컵 참가국 확장을 바탕으로 한 텔레비전 중계권 수익 극대화, 피파의 상업적 권리 확대 등을 통해 피파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스포츠연맹으로 만들었습니다. 4년 주기로 열리는 월드컵 사업으로 재정을 확충하면서 제3세계 축구나 여자축구, 청소년 축구를 위한 골(GOAL) 프로그램 투자액만도 10여년간 수십억달러를 넘습니다. 유럽이나 남미 중심에서 벗어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월드컵을 개최하도록 했고, 이젠 중동 국가에까지 월드컵 개최권을 주었습니다. 가장 유럽적인 사람이 축구의 시장성을 비유럽에서 찾은 혜안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블라터 회장은 그동안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축구연맹 내 반 블라터 전선의 압박에 꿋꿋이 버텨왔습니다. 영국 언론은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더미의 꼭대기에서 블라터는 혼자 '장미 냄새가 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블라터 회장을 비꼽니다. 하지만 블라터 회장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기가 한번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습니다.

는 "그동안 블라터 회장의 어휘 창고에 들어있지 않은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블라터 회장은 "내가 개인들을 일일이 조사해볼 수도 없는 일"이라며 발뺌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언론은 앞으로 블라터 회장에 대한 공격을 더 거세게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미국 법무부가 피파 부패 문제에 대한 2차 기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블라터 회장이 사법적 처리의 포위망을 피해간다 하더라도 피파의 최고 책임자로서의 권위의 실추는 더 가속화할 것입니다. "나는 산양처럼 (불굴의 의지로) 전진만 한다"는 블라터 회장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절대 암벽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피파 회장 5선 당선이 그땐 노욕이라는 판정을 받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의 현란한 말은 신뢰를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