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이 폭력이 될 때

무작정 배부른 내 밥공기에 밥을 얹어놓으시는 분들이 그렇고 장애인만 보면 억지로 경로석으로 안내하는 손길들이 그렇다. 한 시각장애인 친구는 시련의 아픔을 달래고자 지팡이를 짚고 추적추적 비를 맞으면서 걷고 있는데 속 모르는 누군가가 어느 때부턴가 우산을 씌워주면서 따라오더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눈물이라도 펑펑 쏟으면서 슬픈 감정을 토하고 싶던 그 친구는 괜찮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했지만 친절고집을 부리던 그 분도 끝내 우산을 거두지 않으셨다고 한다. 가벼이 웃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도움이나 배려가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때 그것은 또 다른 폭력과 억압이 될 수도 있다.

2015-05-29     안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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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이 겨우 닿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겨우겨우 집어다 먹고는 있었지만 옆손님도 있고 해서 계속 그리로 팔을 뻗는 것이 민망스럽기도 했다.

장례식장에서 이 음식 저 음식 가려가면서 물어보는 것도 조금 그렇고 해서 더 묻지도 않고 먹다 보니 결국 첫 번째 젓가락질에 걸렸던 홍어무침은 한 젓가락도 더 먹지를 못하였다.

사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낯선 사람들과 고깃집에 가면 구운고기를 양파더미 위에 올려주고는 하시는데 고기를 잘 찾지 못해서 양파만 열심히도 먹다 보면 어느 순간 당황스럽게도 양파를 한 무더기 리필해 주시고는 한다. 양파부터 다 해치우고 고기를 찾으려고 했던 것이 양파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였던가 보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는 비싸고 멋진 장난감을 많이도 사 주셨다. 다른 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문학서적이나 어학교재들도 우리집 책꽂이에는 칸이 못자랄 정도로 꽂혀있었다.

수두룩하게 꽂혀있던 서적들도 나와의 맞지 않는 궁합 때문에 내게 독서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라는 훈장만을 남겨주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정이 많다. 나누고 싶어하고 돕고 싶어하는 측은지심도 지나칠 정도로 풍부하다.

무작정 배부른 내 밥공기에 밥을 얹어놓으시는 분들이 그렇고 장애인만 보면 억지로 경로석으로 안내하는 손길들이 그렇다.

눈물이라도 펑펑 쏟으면서 슬픈 감정을 토하고 싶던 그 친구는 괜찮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했지만 친절고집을 부리던 그 분도 끝내 우산을 거두지 않으셨다고 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과 눈높이에서 출발해야 한다.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났을 때 혹은 사랑하는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입이 닳도록 묻고 또 확인하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소박한 꿈들도 부모님의 욕심 속에 묻히고 어느 장애인의 일상은 나쁜 친절들 속에 큰 상처로 남겨질 수도 있다.

어떤 누구의 세상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맘대로 판단되어지거나 움직여져서는 안된다.

진정 함께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언어로부터 생각할 때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그것은 의외로 거만한 생각일 수도 있다.

홍어무침과 고기 몇 점, 나에게 그것은 작지만 소중한 욕구이자 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