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수함 도입? 여기서 멈춰야 한다

한국사회에 핵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가 아니다. 탈핵 시대로 가자던 문재인정부가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하겠다고 한다. 대선시기 당시 핵잠수함 보유 의사를 밝혔던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최근 송영무 국방장관과 이낙연 국무총리도 거들고 나섰다. 핵잠수함 보유와 한반도 비핵화는 다른 문제라는 주장이 덧붙여진다. 자유한국당은 전술핵 재배치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는 국민들의 핵무장 지지 여론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걸 보여준다.

2017-08-25     박정은

탈핵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사회에 때 아닌 핵무장이나 핵의 군사적 이용이 회자되는 상황은, 가시적인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반작용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한반도에 오랜 시간 지속돼온 핵 갈등에도 한국사회는 그 어떤 핵 위험도 없는 한반도를 상상하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 포기만을 의미할 뿐이다. 핵무기의 가공할 살상력이 남과 북에서 다르게 나타나지 않을 터인데, 한-미 정부는 한반도 상공을 배회하는 미국의 핵폭격기의 존재감으로 국민을 안심시키려 한다. 미국 전략 핵무기의 전개에 안도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일일까. 평화를 위해 핵을 군사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한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그토록 비난하는 북한의 핵무장 논리와 닮아 있다.

핵잠수함 도입의 비효용성

핵잠수함이 있으면 북한의 SLBM을 저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기 위해 사드를 추가로 배치하겠다는 것만큼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다. 핵추진 잠수함이 주목받는 것은 원자로를 탑재한 핵잠수함이 디젤 잠수함보다 속도를 빨리 낼 수 있고, 재충전 없이 장시간 작전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존 잠수함이 할 수 없는 것을 마치 핵잠수함만 있으면 SLBM을 탑재한 잠수함을 출항 전부터 탐지하고 추적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 전대로도 북한 잠수함의 탐지와 추적이 가능하며, 핵잠수함보다는 여러대의 디젤 잠수함을 보유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대내외 평가도 존재한다. 북의 잠수함에서 미사일 발사 징후를 포착하여 직접 선제공격할 수 있는지는 또다른 문제이다.

국제사회와의 역진 대신 근본 해결을

2013년에만 72대의 핵잠수함을 보유한 미국이나 12대를 가진 영국(Arms Control Association, 2013)의 경우, 핵무기에 사용될 핵물질을 줄이고 추가적인 생산을 중단시키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역행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브라질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 중 처음으로 핵잠수함 도입 계획을 밝힐 때 핵확산 가능성에 대한 강한 우려가 제기되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비용 문제 등으로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지만, 브라질의 사례는 다른 비핵국가들이 잠수함 보유를 명분으로 핵무기 원료 획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위험한 선례로 인식되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오래된 유물과도 같은 핵의 군사적 이용을 설파하는 것이 아니다. 핵잠수함을 보유한다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제거할 수 있을 것처럼 호도해서도 안 된다. 북한의 핵무장을 저지할 수도, 포기시킬 수도 없는 전술핵무기 재배치 주장도 터무니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더이상 한반도 핵 문제를 북한 핵 문제로 치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시민 안전과 한반도 평화에 책임 있는 정부라면, 한반도에서 그 어떤 핵무기의 개발, 배치, 사용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 비핵지대를 구상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