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비시 동료들, 파이팅!

<공범자들>을 보면 선명하다. 권력에 아부하고 바른 소리 하는 아랫사람 자르고, 사장이 갈리면 비슷한 사람이 또 나와 아부하고 자르고..., 영화의 어디를 잘라 어디에 갖다 붙여도 붙을 것 같다. 그 동어반복의 상황이 부끄럽고 지쳐서 조용히 있었던 거지, 엠비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어서 그런 게 절대 아닐 거다.

2017-08-22     임범
ⓒ뉴스1

시절을 대변하는 것 같은 장면이 또 있다. 1988년 저녁 뉴스에서 강성구 앵커가 멘트를 하는데 웬 남자가 옆에 와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말하다가 바로 끌려나갔다. 이 남자는 그 뒤에도 몇 번 더 지상파 텔레비전 화면 안으로 '난입'해 같은 말을 했다. 막 지나간, 끔찍했던 5공화국이 아직 안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뒤에 그 사람이 잘 지내는지 가끔 궁금했다. 그 채널도 엠비시였다.

을 보고 새삼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군 복무 중이던 1980년대 중반 내무반에서 본 엠비시 단막극 <베스트셀러 극장>은 다른 드라마와 달리 사회의 어둡고 예민한 구석을 들췄다. 제대하고 뭘 할지 막막하던 그때 "저런 드라마 만들고 살면 조금은 덜 부끄럽지 않을까" 하며 엠비시 드라마 피디를 꿈꾸기도 했다.

2010년, 반백수로 지내던 내게 엠비시 선후배 기자들이 찾아왔다. 시사프로그램 '2580'을 이끌어온 이들이었다. 엠비시 창사 5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같이 일하자고 했다. 그들과 반년 가까이 함께 일하면서 많이 친해졌는데, 얼마 뒤 엠비시 사장이 바뀌고 퇴진 요구 시위와 보복 인사가 있고 나서 보니 모두가 기자 아닌 다른 직으로 발령이 나 일산, 용인, 성남 등지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 들으면 화가 나겠지만 나는 내심 반가웠다. '나는 제대로 된 인간들과 어울릴 팔자를 타고났구나.'

을 보면 선명하다. 권력에 아부하고 바른 소리 하는 아랫사람 자르고, 사장이 갈리면 비슷한 사람이 또 나와 아부하고 자르고..., 영화의 어디를 잘라 어디에 갖다 붙여도 붙을 것 같다. 그 동어반복의 상황이 부끄럽고 지쳐서 조용히 있었던 거지, 엠비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어서 그런 게 절대 아닐 거다. 마침 기자, 피디, 아나운서들이 제작 거부에 나섰단다. 곧 응원 갈 거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