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상식'의 집요함

그들은 한국 경제의 미래와 삼성의 운명에 대한 걱정을 쉼 없이 내뱉고 있지만, 이 모든 문제의 출발이 이재용의 불법행위라는 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법정에 제출된 증거가 빈약하거나 채택되지 못해서 이재용에게 유리할 것'이라며 바람을 잡는 데에만 열을 올린다.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라는 무소불위의 논리는 지금까지 언제나 법 앞의 평등 원리에 앞섰다. 2005년 '삼성 엑스파일' 사건 때도 그랬고,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 때도 그랬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들은 늘 그랬고 우리는 그런 그들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2017-08-10     서복경 258
ⓒ뉴스1

좌파가 고발을 했건, 여론몰이가 있었건 법을 위반했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은 무시된다. 홍준표 대표의 발언은 군이 법의 지배를 받지 않아도 되는 성역이라는 '오래된 상식'을 반복한다. 그래서 그저 '막말'로 냉소하며 웃어넘길 수가 없다. 법 앞의 평등 원리를 좌파의 이념선동으로 대체함으로써 법치를 무력화시키는 수법은 오래되고 낡은 것이지만 그래서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며칠 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게 12년형이 구형되었다. 특검에 따르면 그는 '계열사 자금을 횡령하여 300억원에 이르는 뇌물을 공여했고, 국내 재산을 해외로 불법 반출했으며,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범죄수익을 은닉했고, 국회에서 위증의 죄'를 범했다고 한다. 이 사태를 두고 우리 사회 일부 언론은 지금까지 재벌을 법치의 성역으로 만들어주었던 '오래된 상식'을 반복하는 데 여념이 없다. '오너 없는 경영을 하고 있는 삼성'과 '한국 반도체 산업의 운명'에 대한 절절한 걱정들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군·정보기관·재벌이 법치의 성역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데에는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런 익숙함도 한몫을 한 게 사실이다. 수십년간 반복되었기에 '이번에도 또? 놀랍지도 않네'라는 체념이 쉽게 자리잡은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가 재벌이든 노동자든, 국정원 직원이든 아니든, 군 장성이든 사병이든 모두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이 단순한 원리는 생각보다 실현이 참 어렵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