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수능 개편,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

'전형 관리'라는 큰 그림 없이 '수능 개편'을 성급히 내놓았다. 내용을 보면 1안으로 가면 현행 대비 나아지는 게 없고, 2안 자체로는 변별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누구나 1안을 찬성할 수밖에 없도록 이상한 양자택일을 만들어 놓았다. 모두 '전형 관리'라는 큰 그림 없이 '수능 개편'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2안 공히 고교학점제와 어긋나게 설계하여 '국영수는 고3까지 해야 한다'는 통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래저래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 참여정부의 어두운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2017-08-10     이범
ⓒ뉴스1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1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즉 이번 수능 개편안은 1안으로 가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왜 그런가? 2안으로는 도저히 변별이 안되기 때문이다. 등급제 절대평가로는 지원자 중에 동점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누가 봐도 2안은 버리는 안이다.

1안의 두 번째 문제는 탐구(과학/사회/직업)과목이 여전히 상대평가여서 '선택의 왜곡'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상대평가 하에서는 물리나 경제처럼 '학업능력이 우수한 학생이 선호할 것으로 보이는 과목'은 나머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기피 대상이 된다. 우수한 학생과 경쟁하여 석차에서 밀리면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행 수능 과학탐구에서는 물리 선택자가 가장 적고, 사회탐구에서는 경제 선택자가 가장 적다. 제2외국어 중 가장 선택자가 많은 과목이 어처구니없게도 아랍어이다. 모두 상대평가로 인한 왜곡 때문이다. 서구 선진국의 대학입시에서 상대평가가 전무한 것은, 상대평가가 선택을 왜곡시켜 '다양한 교육'과 양립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1안에 의하면 다행히 제2외국어는 절대평가로 바뀌지만, 탐구(과학/사회/직업)과목은 여전히 상대평가이다. 물리와 경제는 매우 중요한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피 대상이 될 것이다. 이번 수능 개편안을 설계한 사람은 평가 전문가가 아님이 분명하다.

1안과 2안이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점도 있다. 결정적으로 이번 수능 개편안은 고교학점제와 어긋난다. 사람들은 '국영수는 필수, 사회·과학은 선택'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년 국가교육과정에 의하면 국영수도 필수과목은 고1에 배우는 범위까지이다. 고2,3에 배우는 내용은 국영수라 할지라도 선택과목이다. 다만 여태까지 선택을 학생 개인이 하지 않고 학교에서 집단으로 했기 때문에 선택과목처럼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고교학점제가 시작되어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면, 국영수라 할지라도 고1 과정만 공통과목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수능을 보면 고교학점제의 이러한 취지는 완전히 사라지고 고2,3에 배우는 내용까지 모두 수능 국영수에 포함되어 있다.

김상곤 장관의 사실상 첫 작품인 수능개편안을 보면서 참여정부의 실패가 떠오른다. 참여정부는 '전형 관리'라는 큰 그림 없이 '수능 개편'을 먼저 내놓았다. 2004년에 집권 마지막해인 2007년(2008학년도 대입) 치러지는 수능에 '등급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해버린 것이다. 상대평가를 유지하되 점수 없이 상위 4%까지 1등급, 상위 4~11%까지 2등급,... 이런 식으로 등급만 부여하는 방안이었다. 그러자 변별력을 우려한 상위권대학을 중심으로 정시전형에 논술을 다투어 도입했고, 결국 2008학년도 대입 정시전형은 수능+내신+논술을 합산 반영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되어버렸다. 학생·학부모의 부담이 커졌고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참여정부 최악의 정책실패 중 하나였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대입 3년 예고제'를 무시하고 1년만에 수능 등급제와 정시 논술을 폐지하자 학생·학부모들은 안도했다.

나는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정책을 만드는데 일조했지만, 내년에 연구를 위해 출국할 예정이어서 대선이 끝나고서는 홀가분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수능 개편안을 보면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대학입시와 고교교육에 대한 전략적·종합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의 정책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복기가 되고있는지 의문이다.

알림) 8월 21일 오전10시 국회 의원회관 9간담회실에서 더미래 연구소 주최로 수능개편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립니다. 필자가 발제자로 발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