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시민이 되자!

탈원전 문제를 시민과 전문가의 대립으로 몰고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탈원전', '전문가', '시민'을 묶어서 검색해보니, '탈원전은 시민이 아니라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식의 기사가 눈에 꽤 띄더군요.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분리돼선 안 되리라 여겼던 까닭입니다. 탈원전엔 과학적, 공학적, 사회경제적, 윤리적 문제 등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 사람이 모든 문제의 전문가일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원자핵발전 전문가와 탈핵 활동가 가운데 누가 원전 없는 세상을 더 많이 상상해왔는지 헤아리면, 탈원전의 전문성이 어느 쪽에 더 있는지 따지기도 그리 간단치만은 않습니다.

2017-08-02     윤태웅
ⓒ뉴스1

사카타는 물리 연구와 평화 운동의 가치가 같다며, 이 둘을 더불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정신은 제자인 마스카와에게 그대로 이어집니다. 마스카와는 지금 헌법 9조를 지키려는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9조 과학자 모임'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지요. 전쟁 포기 선언을 담은 헌법 9조는 시민인 마스카와뿐 아니라 과학자인 마스카와에게도 잃어선 안 될 소중한 가치입니다. 전쟁할 수 없는 나라에선 과학자의 연구가 군사적으로 응용될 가능성도 줄어들 테니까요.

탈원전 문제를 시민과 전문가의 대립으로 몰고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탈원전', '전문가', '시민'을 묶어서 검색해보니, '탈원전은 시민이 아니라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식의 기사가 눈에 꽤 띄더군요.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분리돼선 안 되리라 여겼던 까닭입니다. 탈원전엔 과학적, 공학적, 사회경제적, 윤리적 문제 등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 사람이 모든 문제의 전문가일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원자핵발전 전문가와 탈핵 활동가 가운데 누가 원전 없는 세상을 더 많이 상상해왔는지 헤아리면, 탈원전의 전문성이 어느 쪽에 더 있는지 따지기도 그리 간단치만은 않습니다.

전문가는 시민을 존중하고, 시민은 전문가를 신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문가 사회가 성찰하고 시민적 정체성을 인식한다면, 시민들은 전문가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문제는 복잡다기하여 보통은 유일한 정답이 존재하기 어렵겠지요. 여러 해법 가운데 하나를 시민들이 잘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전문가의 소임이라 여깁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