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산 전망대에 서서
핵무기는 보유함으로써 의미를 갖는 정치적 무기이지 필요하다고 쓸 수 있는 군사적 무기가 아닙니다. 김정은이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는 한 핵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한·미 양국의 대응도 여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100% 안보'는 없습니다. 절대안보의 추구는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끝없는 악순환을 초래할 뿐입니다. 안전을 추구할수록 서로 불안해지는 '안보 딜레마'의 역설입니다.
옛날 옛적 중국 시인 이백(李白)은 '어인 일로 푸른 산에 사느냐(何事棲碧山)'는 질문에 '소이부답'하니 '마음이 스스로 한가롭다(心自閑)'고 했지만 제 마음은 그렇지 못합니다. 때론 심란한 게 사실입니다. 차로 20분만 가면 북한 땅이 보이고, 30분을 달리면 비무장지대가 나타나는 곳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때마다 제가 종종 찾는 곳이 있습니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 지점에 있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입니다. 집에서 20㎞ 남짓밖에 안 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제도 그곳에 갔습니다. 휴일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습니다. 남북한에서 각각 발원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망망대하(茫茫大河)는 언제 봐도 장관입니다.
전망대에는 통일에 대한 방문객들의 염원을 적는 코너가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이다'라는 말 앞에 통일을 바라는 이유를 써넣게 돼 있습니다. 북한의 ICBM 도발 탓인지 누군가 '통일보다 핵 개발 중단'이란 문구를 그 자리에 남겼습니다.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 '강대국으로 가기 위해' '일본 배 아프게'라는 문구도 눈에 띕니다. '긴 기찻길 따라 유럽으로 맛집 탐방, 그래서 통일이다'는 문구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핵무기는 보유함으로써 의미를 갖는 정치적 무기이지 필요하다고 쓸 수 있는 군사적 무기가 아닙니다. 김정은이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는 한 핵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한·미 양국의 대응도 여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100% 안보'는 없습니다. 절대안보의 추구는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끝없는 악순환을 초래할 뿐입니다. 안전을 추구할수록 서로 불안해지는 '안보 딜레마'의 역설입니다. 세상에는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북한 핵 문제도 철학과 세계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활시위를 너무 팽팽하게 당기면 줄은 끊어지게 돼 있습니다. 역사의 철칙입니다. 그래서 저는 북한 탓에 심란할 때마다 종종 오두산 전망대를 찾습니다. 접경지역 주민인 제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