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산 전망대에 서서

핵무기는 보유함으로써 의미를 갖는 정치적 무기이지 필요하다고 쓸 수 있는 군사적 무기가 아닙니다. 김정은이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는 한 핵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한·미 양국의 대응도 여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100% 안보'는 없습니다. 절대안보의 추구는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끝없는 악순환을 초래할 뿐입니다. 안전을 추구할수록 서로 불안해지는 '안보 딜레마'의 역설입니다.

2017-08-02     배명복
ⓒ뉴스1

옛날 옛적 중국 시인 이백(李白)은 '어인 일로 푸른 산에 사느냐(何事棲碧山)'는 질문에 '소이부답'하니 '마음이 스스로 한가롭다(心自閑)'고 했지만 제 마음은 그렇지 못합니다. 때론 심란한 게 사실입니다. 차로 20분만 가면 북한 땅이 보이고, 30분을 달리면 비무장지대가 나타나는 곳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때마다 제가 종종 찾는 곳이 있습니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 지점에 있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입니다. 집에서 20㎞ 남짓밖에 안 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제도 그곳에 갔습니다. 휴일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습니다. 남북한에서 각각 발원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망망대하(茫茫大河)는 언제 봐도 장관입니다.

전망대에는 통일에 대한 방문객들의 염원을 적는 코너가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이다'라는 말 앞에 통일을 바라는 이유를 써넣게 돼 있습니다. 북한의 ICBM 도발 탓인지 누군가 '통일보다 핵 개발 중단'이란 문구를 그 자리에 남겼습니다.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 '강대국으로 가기 위해' '일본 배 아프게'라는 문구도 눈에 띕니다. '긴 기찻길 따라 유럽으로 맛집 탐방, 그래서 통일이다'는 문구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핵무기는 보유함으로써 의미를 갖는 정치적 무기이지 필요하다고 쓸 수 있는 군사적 무기가 아닙니다. 김정은이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는 한 핵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한·미 양국의 대응도 여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100% 안보'는 없습니다. 절대안보의 추구는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끝없는 악순환을 초래할 뿐입니다. 안전을 추구할수록 서로 불안해지는 '안보 딜레마'의 역설입니다. 세상에는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북한 핵 문제도 철학과 세계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활시위를 너무 팽팽하게 당기면 줄은 끊어지게 돼 있습니다. 역사의 철칙입니다. 그래서 저는 북한 탓에 심란할 때마다 종종 오두산 전망대를 찾습니다. 접경지역 주민인 제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